조현석 경북일보 디지털뉴스국장.

해 질 무렵, 파도가 숨을 고르는 바닷가에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번진다. 포항 북구 칠포해변이 들썩인 건 단지 초여름의 바람 탓만은 아니다. 제19회 칠포재즈페스티벌이 6월 14일부터 이틀간 열렸고, 그곳에선 음악이 바다를 삼켰고, 사람들은 파도에 취했다. 음악과 바다, 도시와 예술이 교차하는 그 현장을 한 사람의 관객으로서, 또 사회적 문화 생태를 지켜보는 관찰자로서 기록해본다.

티켓 예매는 전쟁이었다. 조기 매진으로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공연 당일 오전, 티켓 부스에서 팔찌(손목 밴드)로 교환하기 위한 인파는 이미 축제의 서막을 열고 있었다. 무더위를 버티기 위한 돗자리, 앉은뱅이 의자, 양산은 필수 생존 장비를 들고 줄 선 사람들의 표정은 들떠 있었다. 새벽부터 서울에서 출발한 이승윤 팬, 팀티를 맞춰 입은 에픽하이 팬들, 무대 밖에서도 ‘덕질’은 이미 시작되고 있었다.

공연장에 들어서자 가장 먼저 반긴 건, 따가운 햇살이었다. 바다 특유의 그늘 없는 햇빛 아래서 사람들은 수건을 두르고, 우산을 받쳐 쪼그려 앉았다. 하지만 오후 4시, 음악이 시작되자 우산은 일제히 접혔다. 음악 앞에서의 예의였다.

첫 무대는 인디밴드 ‘지소쿠리 클럽’. 정지석의 담담한 음성이 잔디 위로 흘렀고, 이어 등장한 하동균의 짙은 감성은 관객의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했다. 이승윤은 기타 하나로 무대를 장악했다. 그의 노래는 한 편의 독립영화 같았고, 누구도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비팬’을 ‘팬’으로 만드는 순간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다.

폴킴이 등장하자 바닷바람이 공연장 안을 훑고 지나갔다. “모든 날, 모든 순간”이 울려 퍼질 때, 관객들은 각자의 추억에 잠겼고, 핸드폰 불빛은 하늘을 수놓았다. 바다 위에서 벌어진 집단 프로포즈 같았다.

밤이 되자 무대는 폭발했다. 에픽하이가 등장하면서 돗자리는 거두어졌다. 관객들은 일제히 일어나 리듬에 몸을 맡겼다. “You can fly!”라는 외침에 수천 명이 응답했다. 타블로는 위트와 공감을, 투컷은 감각적인 사운드를, 미쓰라 진은 묵직한 울림을 안겼다. 환호는 불꽃놀이보다 더 선명하게 밤하늘을 갈랐다.

첫날 공연의 대미는 넬의 몽환적 사운드였다. 시간이 느려지고 공간이 흐려지는 듯한 착각 속에서 ‘Stay’가 흘렀을 때, 관객은 숨을 죽였다. 누구도 말하지 않고, 누구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들을 뿐이었다. 조용하지만 가장 강렬한 순간이었다.

이튿날은 이름 그대로 재즈의 향연이었다. 박재홍 밴드의 호소력 짙은 블루스는 잔잔한 잔디밭을 뜨겁게 달궜고, 감미로운 건반과 관객과의 호흡은 단순한 연주를 넘은 교감이었다. 위나&조윤성 트리오의 무대에선 추임새조차 리듬이 됐고, 재치 넘치는 진행은 어린이부터 장년층까지 모두를 하나로 묶었다. ‘여름’을 주제로 한 곡에는 야자수, 파도, 푸른 하늘이 미디어 아트로 함께했으며, 가족 단위 관객은 환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재즈파크빅밴드와 박기영 Jazz Messenger는 각기 다른 매력의 재즈 세계를 보여줬고, 대미를 장식한 조째즈는 대중적 매력과 재즈의 긴장감을 동시에 전달하며 무대를 휘감았다. 트롯 팬까지 사로잡은 폭넓은 스펙트럼은 무대 구성의 힘을 느끼게 했다.

흠이 없지는 않았다. 일부 푸드트럭과 부스는 몰려든 인파를 감당하지 못해 긴 줄이 생겼고, 주차 공간 부족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자원봉사자와 경찰, 모범운전자들의 통제로 교통은 비교적 원활하게 유지됐다. 특히 화장실의 청결 상태는 예상 밖의 호평을 받았다. 공연과 별개로, 터키 아이스크림 상인의 퍼포먼스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칠포재즈페스티벌은 ‘재즈’라는 타이틀에만 갇히지 않았다. 인디, 발라드, 힙합, 락까지 다양한 장르가 뒤섞였고, 관객은 이질감 없이 음악이라는 공통 언어로 어우러졌다. 장르의 경계가 사라진 자리에서 사람들은 새로운 감각을, 새로운 관계를 만들었다.

내년은 20주년이다. 칠포의 바다와 음악이 함께한 시간, 그리고 그 안에서 만들어진 수많은 스토리들. (사)칠포제즈축제위원회 황성욱 부위원장은 “해외 유명 아티스트 섭외에 집중하겠다”고 예고했다. 세계로 향하는 포항의 음악 축제가 되기 위해선, 지금의 다양성과 지역성, 그리고 중심인 ‘재즈’라는 정체성을 함께 끌고 가야 한다.

좋은 공연은 뮤지션이 만들지만, 좋은 축제는 관객이 완성한다. 칠포는 그 증거였다. 음악에, 바다에, 사람에 빠진 이틀. 그 여운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바다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 음악과 함께.

조현석 기자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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