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포교회 창립 80주년 맞아 에티오피아 용사·유가족 7명 초청
한국전·월남전 참전영웅 및 에티오피아 참전영웅 초청 감사예배
김진동 목사 “참전용사 기억하고 예우는 우리의 당연한 책무”

22일 포항 양포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뜰라운 테세마와 벨라체우 아메네쉐(맨앞줄 왼쪽). 뒷쪽은 포항지회 6·25 참전용사, 참전학도의용군회, 월남전 참전용사들.
6·25 전쟁 75주년을 앞둔 6월 22일, 경북 포항시 남구 양포교회 잔디마당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온 듯한 감동적인 만남의 장이 펼쳐졌다.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에서 온 용사들과 그 후손들이 양포교회의 초청으로 한국 참전용사들과 재회하며, 언어를 초월한 깊은 전우애가 맴돌았다.

포항지회 6·25 참전용사, 참전학도의용군회, 월남전 참전용사들은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지한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을 따뜻한 박수로 맞이했다. 노병들의 눈빛 속에는 격렬했던 과거의 전장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듯했다.

양포교회는 창립 80주년을 기념해 한국전과 월남전 참전영웅, 그리고 멀리 에티오피아 참전영웅들을 초청해 감사 예배와 위로의 시간을 가졌다.

오전 10시, 교회에는 6·25 참전용사 27명, 월남전 참전용사 34명, 그리고 에티오피아 참전용사와 유가족 7명이 함께 자리했다. 뜰라운 테세마(100세)와 벨라체우 아메네쉐와(92세) 참전 용사, 전사자의 자녀인 마미투 훈데(73세)와 에프렘 하일아들(50세) 등이 참석해 그 의미를 더했다.

백발이 성성한 뜰라운 테세마와 벨라체우 아메네쉐와는 75년 전 함께 싸웠던 한국 땅을 다시 밟으며 감격의 눈물을 글썽였다.

군목 시절 입었던 군복을 다시 꺼내 입은 양포교회 김진동 목사.
김진동 목사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한 분의 ‘한국에 다시 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이 모든 만남의 시작이었다”고 회고했다. 이 감동적인 초대는 4월부터 정성스럽게 준비되었다.

에티오피아 방문단은 지난 19일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해 포항에 도착했다. 20일에는 세명기독병원의 후원으로 건강검진을 받았다. 벨라체우는 이석증 치료를 받았고, 에프렘은 고막 부재를 처음으로 발견해 수술을 준비 중이다. 21일에는 한국수력원자력을 견학하며 한국의 눈부신 발전을 직접 목격했다.

양포교회 앞 잔디마당에 모인 참전용사들은 대부분 지팡이와 휠체어에 의지했지만, 그들의 정신은 여전히 굳건했다.

김 목사는 군목 시절 입었던 군복을 다시 입고 ‘여호와께서 지키시리라’는 제목으로 설교하며 “오늘의 대한민국은 참전용사들의 숭고한 희생과 하나님의 보호 덕분”이라고 강조했다.

뜰라운 참전용사의 10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깜짝 축하연 모습. 뜰라운 참전용사 부부.
뜰라운 참전용사의 100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깜짝 축하연이 열렸고, 그는 아내와 함께 강대상에 올라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뜰라운은 “죽기 전에 꼭 한국을 다시 찾고 싶었는데, 이렇게 따뜻하게 초대받아 너무나 감격스럽다”며 “한국은 나의 두 번째 고향”이라고 진심을 담아 말했다.

에티오피아는 6·25 전쟁 당시 아프리카에서 유일하게 지상군을 파병한 국가였다. 황실 근위대 출신의 ‘강뉴부대’는 6037명을 다섯 차례에 걸쳐 파병해 253회의 전투에서 모두 승리하는 혁혁한 공을 세웠다.

22일 포항 양포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 뜰라운 테세마와 벨라체우 아메네쉐(맨앞줄 왼쪽). 뒷쪽은 포항지회 6·25 참전용사, 참전학도의용군회, 월남전 참전용사들.
벨라체우는 “강을 건너던 중 얼음이 깨져 전우가 빠졌을 때, 신발을 벗기고 다리를 주무르며 살렸다”고 증언하며 당시의 처절했던 전장의 모습을 생생하게 전했다.

그러나 귀국 후, 에티오피아 참전용사들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1974년 군부 쿠데타 이후 사회주의 정권은 참전용사들을 ‘제국의 잔재’로 몰아 탄압했고, 지원은 완전히 끊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벨라체우는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주저 없이 한국을 위해 싸우겠다”고 굳건한 의지를 밝혔다.

전사자의 딸 마미투는 아버지의 부재 속에서 힘겨운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녀는 “해발 3400m 산에서 나무를 해다 팔던 어머니를 보며 자랐고, 5학년 때 학교를 그만두고 식모살이를 하다 15세에 결혼했다”고 회상하며 “이번 방문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라며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22일 포항 양포교회에서 6·25 참전용사들을 맞이하는 김진동 목사.
1994년부터 31년째 참전용사 초청 감사예배를 드린 김진동 목사는 “참전용사들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한 책무”라며, 2017년부터는 에티오피아 참전용사까지 초청 범위를 확대했다고 밝혔다.

이번 행사는 정부 예산 없이 순수한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졌다. 김 목사는 “예산은 기적처럼 모자라지도 남지도 않았다”고 말하며, 이 만남이 전쟁을 넘어선 깊은 우정과 존경의 표본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현석 기자
조현석 기자 cho@kyongbuk.com

디지털국장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제보 010-5811-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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