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서서 바라보는 풍경마다 놓쳐버린 삶의 여유 일깨워 줘
전국의 670여 개 서원 중 유네스코의 인정을 받은 것은 소수서원이 가진 한국 서원의 전통적 특색과 성리학적 가치가 세계 보편성에 부합했음을 의미한다.
둘레길은 소수서원 매표소에서 시작해 당간지주-취한대-광풍대-소수박물관-영귀봉-소혼대를 잇는 약 1.3㎞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문화재는 입구에서 출구까지 한방향 관람이 일반적이지만, 소수서원 명품 둘레길은 다양한 각도와 흐름으로 서원을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서원 내부의 부속 건물을 하나씩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서원 바깥으로 다시 자연스레 길이 연결되면서 병풍같이 둘러싼 소백산의 풍광으로 인도하는데 ‘다시 잇는다’라는 소수(紹修)의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이곳이 단순한 서원을 넘어 유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선비정신을 되살리는 상징적 공간임을 보여준다.
서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즈넉한 소나무 숲이 어깨를 활짝 피며 방문객을 맞이한다. 곧게 뻗은 소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선 모습은 바람에도 쉽게 굽히지 않는 선비의 절개와 기품을 닯았다. 이 소나무 숲은 가지가 길게 늘어지고 키가 커서 ‘낙락장송(落落長松)’으로 불리는 수백 그루의 소나무 군락이다.
운치 있게 뻗은 소나무 가지들은 서원에 가까울수록 서원을 향해 숙이는 모양 때문에 마치 서원에 공경을 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마서원에 공경을 표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예로부터 소나무는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항상 푸른 모습이 선비의 기개와 닮았기 때문에 학자수(學者樹)라고도 불리어서 더욱 그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소수서원의 소나무들은 겉과 속이 모두 붉은 적송으로, 수령이 수백 년에 달하는 것이 많다. 기록에 따르면 서원의 원장과 원생들이 직접 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숲 가운데 띄엄띄엄 보이는 작은 묘목들은 학자수의 ‘후계목’이라고 불리는데 이 곳에 뿌리를 내린 큰 소나무들의 후손을 키워 그 뜻을 이어가기 위함이다.
두 팔을 걷고 소나무를 심었을 유생들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땅에 내려앉은 솔의 향을 듬뿍 느끼며 상쾌하게 걸음을 내딛다 보면 어느새 취한대와 죽계천이 고개를 내밀며 그 다음 코스로 안내할 준비를 하고 있다.
취한대는 퇴계 이황이 풍기 군수로 부임한 이듬해인 명종 4년(1549)에 만든 누대로, 주변에 소나무와 잣나무, 대나무를 손수 심고 취한대라는 이름을 지었다. 주로 서원의 원생들이 휴식을 취하던 장소로, 현재 이곳에는 1986년에 다시 세운 정자가 남아 있다. 퇴계는 이 곳의 맑고 고요한 풍경 속에서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草有一般意(초유일반의 ) 溪含不盡聲(계함부진성) 遊人如未信(유인여미신) 瀟灑一虛亭(소쇄일허정)
“초목은 그 나름의 이치를 지니고, 죽계는 끝없이 흘러 소리를 다 머금지 못하네. 사람들은 그것을 믿지 못하는 것 같지만, 정자는 텅비어 맑고 고요하게 우뚝 서 있네.”
이 시는 자연의 이치와 그 깊은 의미를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담담히 성찰하며, 진정한 깨달음은 눈에 보이는 형상 너머에 있음을 일깨운다.
죽계는 소수서원에 관한 문헌 기록들에도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퇴계 이황이 이 곳의 아름다움에 대해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소수서원을 세운 조선 중기 풍기군수 주세붕도 이 곳의 경관을 즐기며 시를 읊었다고 한다.
죽계천에 놓인 돌다리를 따라 취한대로 향할 때 펼쳐지는 광경은 당연 장관으로 꼽을 수 있다. 물길 양쪽에 우거진 나무들이 물길을 아늑하게 품은 풍경을 배경으로 죽계를 흐르는 물소리를 듣노라면, 마치 500여년 전 퇴계와 주세붕이 느꼈을 감동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듯하다.
취한대를 지나 물길을 따라 연화산 방면으로 걸어가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숨을 돌릴 수 있는 광풍정(光風亭)이 나타난다. 본래 ‘광풍대’라고 불리던 곳으로 퇴계 이황이 ‘제월광풍(霽月光風)’이라는 말에서 가져와 붙인 이름이다.
제월광풍은 ‘비가 갠 뒤의 바람과 달처럼 마음이 명쾌하고 집착이 없으며 시원하고 깨끗함
을 의미하는 말로, 이 곳 또한 이황 선생의 애정이 어린 장소였음을 알 수 있다. 광풍정에 서면 뒤에서는 상쾌한 공기가 연화산 기슭을 타고 내려오고 앞에서는 연못인 탁청지가 시야에 들어와 복잡했던 머리가 맑아지고 개운해져서 이황 선생이 전하는 광풍대의 의미를 절로 깨달을 수 있다.
풍대에서 보이는 탁청지의 풍광은 마치 액자로 만들어 감상하는 화보처럼 보인다. 봄철에는 벚꽃나무에서 떨어지는 꽃잎이 눈처럼 휘날리며 연못에 하얀 비단을 깔고 여름에는 연꽃이 이불처럼 뒤덮어 청초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가을에는 단풍 일색이 된 나무들이 연못을 거울로 삼아 비치면서 소수서원 전체가 석양 속에 잠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겨울에는 철새들이 찾아와 노니는데 마치 다른 세상의 화면으로 바뀐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계절마다 각각 뿜어내는 다양한 비경들은 사시사철 둘레길을 찾아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광풍대를 뒤로 하고 소수박물관을 지나 죽계교를 건너면 봉긋하게 솟은 둔덕을 돌아 나가게 되는데 그 형상이 마치 거북이가 알을 품은 모습처럼 보여 영귀봉(靈龜峰)이라고 부른다.
영귀봉을 감싸고 돌면 어느새 서원 바깥으로 접어들면서 둘레길의 막바지에 들어서게 되고 그 끝에 소혼대가 나타난다. 소혼대는 본디 조선시대에 원생들을 만나러 온 사람들이 작별의 정을 나누던 장소라고 한다. 중국 남조의 문인 강엄(江淹)이 ‘사람의 혼을 녹이는 것은 오직 이별 뿐이다’라고 읊은 데서 나온 이름인데 그 뜻을 헤아리고 나니 둘레길의 끝이 더욱 아쉽게 느껴진다.
길의 처음부터 끝까지 인문과 자연의 미학을 정성스럽게 담아낸 소수서원 명품 둘레길은 바쁜 일상 속에서 놓쳐버린 삶의 여유와 사색의 깊이를 다시금 일깨워준다.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보는 풍경마다 마음을 다독이는 위로가 되고, 함께 나누는 이야기마다 새로운 추억이 되는 길이다.
소수서원 명품 둘레길에서 소중한 이들과 함께 천천히 걷는 동안 잊지 못할 사색과 공감의 시간을 가져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