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저녁, 길을 나섰다. 자꾸 길을 잃고 헤매는 문장을 따라다니다 지쳐 나선 걸음이었다. 어둠살이 조용히 식혀내고 있는 들녘은 생것들의 풋내로 그득했다. 한소끔 순해져 너그러운 저녁 빛으로 물들고 있는 봇둑을 걸었다. 곧이어 자분자분 바닥을 다독인 무논 위에 하얀 달빛 싸라기 쏟아져 내리고, 바람과 노는 볏 잎들이 쉼 없이 소곤대며 반짝였다. 사부작사부작 산책하며 힐링하던 발걸음을 멈춰 세운 건 놓친 잠 풀숲에 숨겨두고 나온 개구리 울음소리였다. 그 소리는 내 안 어디쯤 숨어 있던 그리움 한 자락 길어냈다. 어느 먼 시간에 담긴 눈부시고 예쁜 계절도 함께 데려왔다.
내가 태어난 곳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강과 바다가 넓은 뜰을 품은 곳이다. 마을을 경계로 강이 있는 앞쪽엔 시골 빛 채색(菜色)을 갖춘 밭들이, 뒤쪽엔 기름진 논이 사철 경계를 넘나들며 제 빛깔 뽐내며 반짝이는 섬 안이다. 경칩이 지나고 개구리가 기지개를 켜면 형산강도 겨우내 품었던 물과의 이별을 서둘렀다. 집집의 농부들이 부역으로 나와 보(洑)를 정비하고 도랑 둑을 매만지고 나면 드디어 형산강 수문이 열렸다. 물줄기는 보에 가득 물을 담고 풍년을 꿈꾸는 섬 안뜰로 향해 내달렸다. 막힌 뜰의 혈을 뚫듯 물줄기는 큰 도랑에서 실핏줄처럼 연결된 작은 도랑을 채우고 마침내 둠벙에 머물러 가뭄에 대비했다.
섬 안뜰 숨탄것들의 심장 소리 요란했던 것은 영일만으로 도도히 흐르는 형산강이 있어서였다. 믿는 곳이 있으니, 성장에만 충실할 수 있었다. 섬 안뜰을 키운 건 물과 햇빛, 농부들의 땀만은 아니었다. 오월의 여치, 유월의 베짱이, 칠월의 개구리 응원가도 한몫했다.
가랑가랑 논에 물이 차면 하얀 뭉게구름이 무논에 풍경처럼 나타났다. 덩달아 개구리들의 본격적인 논바닥 시간도 시작되었다. 하얀 감꽃에 살이 오르면 초성 좋은 누군가의 가락으로 시작해 모내기가 시작되었다. 이에 질세라, 개구리들도 알을 낳아 단원들을 불렸다. 꼼지락거리던 포도알 같은 올챙이는 이내 뒷다리를 내밀고 개구리로 자라 무논을 점령한 뒤 영역 관리에 들어갔다. 밤꽃 향기가 마을을 뒤덮고 비라도 오는 날엔 절전모드였던 개구리 울음소리는 최고조로 향했다. 먼 산 뻐꾸기 목이 쉬어 시들해진 밤이면 우렁우렁한 개구리 떼창에 사름하는 벼들이 우끈우끈 발을 뻗어 내렸다. 청량하고 싱그럽던 바람이 푸른 녹음을 품고 온도를 드높이면, 들판은 풍년을 기원하는 개구리 응원가로 절정이었다. 이중주로 시작된 한밤의 섬 안뜰 무대는 거대한 오케스트라의 장으로 웅장하게 들썩였다. 초록빛 휘파람을 불던 벼들도 풍년을 향한 가쁜 숨결로 뜨겁게 타올랐다.
개구리 합창단이 뜨거운 해엔 풍년이 들었다. 마침내 섬 안뜰이 황금빛으로 물들면 농부들의 입도 벙글었다. 자야네 논에도 수야네 논에도 농부들의 땀에 경의를 표하듯 누렇게 고개 숙인 벼들로 일렁였다. 저녁 꽁보리밥 한 그릇, 게 눈 감추듯 하고 우리들은 보에 첨벙 뛰어들었다. 그런 뒤 봇둑에 나란히 누워 별을 세기도. 콧구멍으로 흘러들어오는 짙은 풀 내음 맡으며 누구네 집 논의 개구리 목청이 더 큰지를 두고 티격태격하기도 했다.
한여름 더위가 성큼 골목 깊숙이 들어섰다. 섬 안뜰의 풍년은 서두르지도, 억누르지도 않고 다름을 잘 품었기 때문이다. 풍년의 꿈으로 비바람에 흔들리면서 한 생을 버틴 건 우리 인간의 생과 다르지 않았다. 우리 또한 생존을 위한 자신만의 투쟁에 함께하는 것들이 있어 완성된다. 품는다는 것은 품에 깃든 도량을 깊게 하고 삶을 떠받치는 감격의 지층을 다져주는 것이기도 하리. 때론 소음일지라도 공존을 위한 목소리라면 귀 기울이고 품어야 하는 이유다. 이즈음, 내 기억 속 그곳엔 개구리 울음소리 요란하다. 섬 안뜰의 응원가에서 나의 응원가로, 그리고 우리의 응원가가 되어 여전히 풍년을 꿈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