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편집부국장

2시간.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인도 자르칸드 지역의 화물열차는 지난달, 선로 옆에서 출산 중인 코끼리를 위해 그 긴 시간 동안 운행을 멈췄다.

임신한 암컷 코끼리가 진통을 겪고 있다는 산림 경비원의 신고에, 철도 당국은 즉시 조치에 나섰다.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조명을 비추고, 열차의 접근을 차단한 가운데, 코끼리는 무사히 새끼를 낳았다.

이 장면은 카메라에 포착되어 SNS를 통해 전 세계에 알려졌고, 많은 이들은 감동을 받았다.

하지만 이 장면이 단순한 ‘따뜻한 뉴스’에 그쳐선 안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개발과 생존의 경계에서, 수많은 생명은 선택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이 주는 메시지는 단순하다.

“멈출 수 있다면, 멈춰야 한다”는 것. 인간 중심의 속도를 당연하게 여겨온 우리는 자연의 흐름 앞에서 너무 많은 것을 놓쳤다.

산업화는 철로를 만들었고, 기차는 시간을 단축했지만, 그 선로 위에서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목숨을 잃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멸종위기종 삵이 고속도로에서 로드킬을 당하고, 야생곰은 인간과의 충돌로 포획되거나 사살된다.

속도를 기준으로 짜인 사회는 비인간 존재의 ‘삶’을 고려하지 않는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문제의 핵심은 정책 결정의 우선순위에 있다. 경제성과 효율, 속도는 언제나 생명보다 앞에 있다.

환경영향평가는 형식에 그치고, 야생 생물의 이동 경로는 무시되기 일쑤다.

고속도로와 철도는 거침없이 뚫리고, 그 위에 설치된 생태통로는 사실상 유명무실하다.

동물의 입장에서 본다면, 도시는 거대한 장벽이요, 인간은 무자비한 개입자일 뿐이다.

하지만 인도의 사례는 전혀 다른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장의 경비원이 구조를 요청하고, 철도 당국이 즉각 대응하며, 지역사회가 위험을 감수한 것이다.

화물열차가 아니라 여객열차였더라도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을지는 미지수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잠시 멈추는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다.

출산 중인 코끼리 한 마리를 위해 화석연료를 실은 열차가 멈췄다는 이례적인 선택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공존의 윤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지금 한국 사회에도 이 질문이 던져져야 한다.

“우리는 멈출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야생과 인간이 충돌하는 현장에서, 인간은 항상 더 많은 권리를 주장해 왔다.

하지만 공존은 일방적인 양보가 아닌, 서로의 생존을 존중하는 조율이다.

우리는 개발에 있어 속도를 늦출 줄 알아야 하고, 생태에 대해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법과 제도는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이런 선택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가 되어야 한다.

코끼리 한 마리의 탄생을 위해 2시간을 멈춘 그 열차처럼, 우리도 언젠가는 멈출 줄 아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공존은 선언이 아니라 행동이며, 그 행동은 때로 불편함을 감수해야만 가능해진다.

생명을 위한 잠시의 정지는, 인간의 품격을 증명하는 가장 조용하고 강한 선택이다.

곽성일 편집부국장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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