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 지형이 빚어낸 기적의 냉기…자연이 만든 여름 석빙고에서 힐링 산책

청송얼음골을 주제로한 사진공모전에서 입상한 작품. 쏟아지는 폭포수를 즐기는 피서객들의 모습.

해마다 더워지는 여름,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시원한 그늘과 찬 계곡물이 그리워질 때면 누구나 마음속에 떠올리는 이상적인 피서지가 있다. 에어컨보다 시원하고, 인파 없이 조용하며, 자연 그 자체가 힐링이 되는 곳. 경북 청송군 주왕산면 팔각산로 230번지 일대, 이른바 ‘청송 얼음골’이 바로 그곳이다.

청송군 주왕산에서 영덕 옥계계곡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이 얼음골은, 보기만 해도 등줄기를 서늘하게 만드는 인공폭포와 함께 한여름에도 얼음이 어는 신비로운 자연현상으로 유명하다. “더울수록 얼음이 더 잘 어는 곳”, 처음 듣는 이에게는 믿기 어려운 말처럼 들리겠지만, 이곳에서는 그 말이 현실이 된다.



청송 얼음골의 본래 명칭은 ‘잣밭골’이다. 주왕산면 내룡리에서 동쪽으로 약 2km 떨어진 깊은 골짜기, 산새만이 조용히 울고 있는 울창한 숲 속에 이 얼음골이 숨겨져 있다. 한여름 섭씨 32도가 넘는 무더위에도 골짜기 초입 웅덩이 주변에는 얼음이 얹히고, 기온이 내려가면 오히려 얼음이 녹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오랜 세월 마을 주민들 사이에서도 신비의 공간으로 전해졌던 이곳은 이제 탐방객과 사진가, 지질학자들의 발길이 잦아진 여름철 명소가 되었다.
 

여름철 피서지로 인기사 많은 청송 얼음골 일대 모습

이 같은 자연현상은 지질학적으로도 특별한 구조에서 기인한다. 청송 얼음골은 화산재가 쌓여 암석화된 ‘응회암’이 발달한 지형에 자리하고 있다. 거대한 바위 절벽 아래 크고 작은 돌무더기가 층층이 얽혀 있는 애추지형(너덜지대)은, 외부와는 다른 미세한 기온 순환을 만들어낸다. 즉, 공기 중의 따뜻한 바람이 바위틈으로 들어가면서 내부의 차갑고 습한 지하 공기와 만나 기화 작용을 일으키고, 이 과정에서 온도가 급격히 떨어지며 얼음이 생성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주로 산 경사면이 북쪽을 향해 햇빛이 잘 들지 않는 지형일 때 더 활발하게 나타나는데, 청송 얼음골은 그러한 조건을 완벽히 갖추고 있다.



무더운 날씨일수록 계곡의 찬 공기는 더욱 또렷해진다. 얼음처럼 차가운 약수는 방문객의 갈증을 단번에 식혀주며, 탁 트인 숲 사이로 쏟아지는 인공폭포의 물줄기는 시각적으로도 청량감을 배가시킨다. 나무 그늘 아래 돗자리를 펴고 앉아 생수를 마시며 폭포 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더위와 피로는 자연스레 사라지고 마음마저 맑아진다.
 

한 여름에 얼을이 어는 기이한 현상으로 관광객들에게 여름피서지로 인기가 높은 청송 얼음골

청송 얼음골은 단순한 ‘시원한 계곡’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이 일대는 걷기에도 안성맞춤인 자연형 산책길과 숲길이 조성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천천히 걸으며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계곡을 따라 조성된 산책로는 발밑으로 흐르는 옥계수를 눈앞에 두고 걷게 하며, 중간중간에는 그늘 쉼터가 있어 짧은 휴식을 취하기 좋다. 특히 가족 단위 여행객이나 연세 있는 어르신들도 무리 없이 이용할 수 있어, 조용한 자연 속에서 건강한 산책을 즐기려는 이들에게 인기다.



산책을 하다 보면 곳곳에 설치된 안내판과 설명판이 눈에 들어온다. 얼음골의 지질학적 특징과 생태 환경, 전설과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어 걷는 즐거움에 지적 호기심까지 더해진다. 그 길 끝에 이르면, 흔히 ‘석빙고 같은 여름’이라 불릴 만큼 서늘한 바위 그늘 아래 앉아 이끼 낀 바위를 타고 흐르는 물에 손을 담그게 된다. 마치 시간을 거슬러 자연이 온전히 보존된 고요 속에 잠시 발을 들인 듯한 기분이 드는 순간이다.



얼음골의 백미는 단지 ‘시원함’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일대는 자연이 만든 명승으로서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애추지형 바위 아래로 흘러내리는 청산 옥계수는 온몸의 열기를 단숨에 가라앉혀주고, 이끼 낀 바위를 감싸 안으며 흐르는 물줄기는 잔잔한 명상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무엇보다 아직 널리 알려지지 않아 조용히 자연을 누릴 수 있는 장소라는 점이 특별하다.



청송 얼음골은 단순한 피서지를 넘어, 짧은 산행 코스를 즐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얼음골에서 해월봉을 지나 구리봉을 거쳐 원구리로 하산하는 등산로는, 도심을 떠나 맑은 공기 속에서 자연을 온전히 호흡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권할 만하다. 등산 도중 정상 부근에서 조망할 수 있는 ‘산태극과 물태극’의 조화는 산악 풍경이 보여줄 수 있는 절정의 장관을 선사한다. 자연이 만든 태극 문양은 흡사 동양화 속 풍경을 보는 듯한 감동을 전한다.
 

청송얼음골 인공폭포는 겨울이면 아이스클라이밍 월드컵이 열리는 경기장으로 탈바꿈한다.

또한 겨울에는 이곳이 전혀 다른 매력을 발산한다. 얼음골 입구에 위치한 ‘탕건봉 인공폭포’는 동절기 ‘월드컵 빙벽대회’가 열리는 장소로, 세계 각지의 아이스클라이머들이 이곳을 찾아 빙벽 등반 실력을 겨룬다. 사계절 내내 색다른 매력을 간직한 청송 얼음골은 단순한 피서지를 넘어, 계절의 흐름을 오롯이 담아내는 ‘살아 있는 자연 교과서’다.



이곳의 즐길 거리는 비단 자연만이 아니다. 봄철에는 인근 부남면에서 얼음골까지 이어지는 ‘애플드라이브코스’가 있다. 4월 사과꽃이 흐드러지게 필 무렵, 이 길을 따라 차창 너머로 흘러드는 향긋한 사과향은 또 다른 힐링의 경험이 된다. 또한 인근에는 지역 특산물인 청송 사과, 약수로 만든 음료와 토속 먹거리 등을 판매하는 농특산물 판매장과 카페도 마련되어 있어 여행의 즐거움을 더한다.
 

2025 청송 아이스클라이밍월드컵 대회에 참가한 신운선 선수가 정상을 향해 힘차게 빙벽을 오르고 있다.

얼음골 절벽 아래에는 ‘원자바위’라 불리는 전설의 암벽도 있다. 옛날 한 고을의 원님이 말을 타고 이 일대를 순시하던 중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이 바위에 ‘원자’란 이름이 붙었다. 이처럼 얼음골은 아름다운 경치에 역사와 전설까지 더해져, 자연과 인문이 어우러진 여행지로 손색이 없다.



무더위 속에서도 한기를 느낄 수 있는 청송 얼음골은, 현대인의 피로를 자연이 치유해주는 진정한 힐링의 공간이다. 걷고, 보고, 쉬고, 마시는 모든 경험이 자연 안에서 일어나는 이 특별한 공간은 단지 무더위를 피하는 장소를 넘어, 몸과 마음이 맑아지는 여행을 가능하게 한다. 여름 휴가 계획이 아직이라면, 지도를 펼쳐 청송 얼음골로 향해보자. 차디찬 약수 한 모금, 숲길 산책 한 바퀴, 그리고 얼음같이 맑은 계곡물에 손을 담그는 그 순간, 여름의 의미가 달라질 것이다.
 

서충환 기자
서충환 기자 seo@kyongbuk.com

청송 담당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