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한 영주담당 기자
권진한 영주담당 기자

공문서 한 장이 사람을 죽였다. 아니, 공문서를 둘러싼 조직의 탐욕과 비겁함이 한 사람을 죽음으로 몰았다.

지난해 11월, 영주시청 6급 팀장 K씨가 숨졌다. 그리고 지난 22일, 경찰이 직장 동료 4명을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K씨가 거부했던 그 ‘조작된 공문서’가 결국 그의 생명을 앗아간 셈이다.

문제의 시작은 지난해 9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주시청 행정안전국에서 민원 서비스 종합평가와 관련해 존재하지도 않은 ‘평가 계획’과 ‘심의 결과 보고’를 꾸며내라는 상급자의 지시가 떨어졌다.

공무원 4명은 그 문서를 출력해 정부 시스템에 증빙자료로 등록했다. 경찰 수사는 그들이 상사의 지시를 받고 가짜 서류를 작성했음을 확인했다.

하지만 고인이 이 ‘문서 조작’을 거부하다가 직장 내 괴롭힘을 당했고, 그 끝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는 유족의 주장은 ‘증거불충분’으로 묻혔다.

자살교사도, 업무상과실치사도, 직권남용도… 결국 모두 ‘불송치’다. 참으로 편리한 단어다. 불송치.

공문서를 위조하고 이를 지시한 상사는 물론, 이를 묵인하거나 방조한 조직은 아무 책임도 없다는 말인가? ‘시킨 대로 했다’는 공무원들은 그저 피해자일 뿐인가?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의 삶을 무너뜨리고도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는 또 다른 K씨를 얼마나 더 기다리고 있는가.

‘직장 내 괴롭힘’은 그저 한 조직의 사소한 갈등이 아니다. 비겁한 상명하복과 침묵의 카르텔이 만든 범죄다.

공문서 조작은 명백한 범법행위다. 그런데도 그 안에서 벌어진 인권유린과 조직적 갑질은 법의 사각지대에 방치됐다.

영주시청이 진정으로 조직의 명예를 생각한다면, 법적 책임을 넘어서 도의적·행정적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상관의 부당한 지시를 거부할 자유가 있는 조직, 이를 이유로 사람이 죽는 일이 없는 조직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야, 영주시 공무원 조직은 더 이상 ‘시민을 위한 공공기관’이라 할 수 없다.

K씨의 죽음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다. 조직의 민낯을 드러낸 경종이다. 더 이상 침묵해서는 안 된다.

권진한 영주담당 기자
권진한 기자 jinhan@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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