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기 1주기에 부쳐
‘추모는 없다’는 공지 하나가 더 많은 이야기를 남겼다. 고 김민기의 1주기를 맞아 공연도, 공식 조문도 없었다. 오직 복각된 첫 앨범 한 장과 그의 뜻을 전하는 짧은 안내문이 전부였다. ‘고인의 삶과 작업이 미화되지 않고 기록되길 바란다’는 유언, 그 한 문장이 그의 생애를 설명한다. 이처럼 조용한 1주기야말로 김민기라는 예술가가 살아온 방식, 그리고 우리가 지금 되새겨야 할 예술과 공동체의 본질을 다시 묻게 만든다.
김민기의 삶과 철학은 단순한 한 명의 예술가의 궤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는 창작을 상품화하지 않았고, 무대를 시장으로 보지 않았다. 《지하철 1호선》이 흥행작이 된 이후에도 그는 더 많은 수익을 좇기보다는 ‘돈이 안 되는 작업’을 택했다. 아이들을 위한 공연, 정치적 기억을 환기하는 음악극, 기록을 위한 아카이빙. 모두 수익은 적고 의미만 남는 일이었지만, 그는 그 길을 선택했다. “나는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지, 돈을 만드는 사람이 아니다.” 그가 남긴 이 말은 오늘날 문화예술계가 직면한 정반대의 상황을 날카롭게 비춘다.
최근 불거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인선을 둘러싼 논란과 ‘K컬처 300조’라는 구호 속 시장 중심의 정책 흐름은 김민기의 철학과 날을 세운다. 수치를 키우는 산업 진흥에는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예술의 본령, 창작자 보호와 문화 생태계의 다양성에는 눈감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김민기는 숫자보다 사람이, 유통보다 무대가, 성공보다 관계가 먼저라고 믿었다. 그의 ‘학전’은 언제나 그렇게 작고 불편하지만 진심 어린 무대였다.
그는 학전을 ‘못자리’라고 표현했다. ‘큰 바닥에 내보낼 묘를 정성껏 키우는 밭.’ 후배 예술가를 발굴하고, 무대에 올리고, 기다려주는 예술가의 자세였다. 윤도현, 김광석, 노영심, 황정민, 조승우. 수많은 이름이 그 밭에서 자랐다. 이것이야말로 공공성이고, 연대이며, 예술이 사회와 맺을 수 있는 가장 건강한 관계다.
지금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예술가를 숫자로 재단하고, 창작물을 산업의 재료로만 다루는 지금의 문화정책이 과연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공연 한 편 없이도 잊히지 않는 예술가’가 존재하는 사회, 바로 그것이 문화 선진국의 조건 아닌가. 창작의 본질은 수익이 아니라 의미다. 예술은 타인을 위한 감정의 자리이며, 공감과 저항과 기억의 무대다. 김민기가 그랬다.
1주기 추모는 없었다. 대신 자발적 헌정 공연과 전시, 후배들의 ‘뒷풀이’가 있었다. 세상이 그의 이름을 조용히 기억한 방식은 오히려 더욱 분명하다. 그가 남긴 <아침이슬>은 이제 누구의 소유도 아닌, 이 시대의 양심이자 기억이 되었다. 그 노래는 계속 불린다. 소란스럽지 않게, 그러나 지워지지 않게.
우리는 여전히 그의 노래와 철학을 부르고 있다. ‘그냥 함께 같이 살아가는 늙은이로 족하다’던 그의 말처럼, 우리 사회가 다시 함께 살아가는 삶의 의미를 돌아봐야 한다. 김민기는 그렇게 떠났지만, 그가 세운 무대는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 조명이 꺼졌어도, 그 자리에 남은 철학은 우리 모두의 몫이다.
지금 필요한 건, 공연이 아니라 태도다. 무엇을 위해 예술이 존재하는가. 그 물음 앞에 김민기의 목소리는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그가 말했던 것처럼, “그걸로 족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