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버들 그늘 아래 걷다 보면 가야의 시간에 닿는다

성밖숲 왕버들 길
도심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싶은 날, 사람들은 숲으로 향한다.

길은 사람을 품고, 걷는 이는 그 길 위에서 위로를 얻는다. 경북 성주에는 사계절 내내 숨을 고를 수 있는 길이 있다. 왕버들의 그늘 아래 보랏빛 맥문동이 피어나고, 그 끝엔 천오백 년 시간을 품은 고분과 마을이 기다린다. 성밖숲에서 성산 고분군을 지나 비채길과 한개마을까지 이어지는 이 여정은, 자연과 역사, 일상의 쉼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성주의 대표 힐링로드다.

성밖숲 맥문동
△ 성밖숲 왕버들길.

150년 세월의 그늘, 성밖숲 왕버들길에서 시작되는 위로성주읍 중심부를 흐르는 이천 강변엔 조선시대부터 마을을 지켜온 숲이 있다. ‘성밖숲’은 예부터 방풍림이자 군민들의 쉼터였고, 지금은 천연기념물 제403호로 지정된 왕버들 군락지다.

150여 그루 왕버들이 초록 터널을 이루는 숲길은 초여름부터 초가을까지 그늘을 짙게 드리우고, 숲길을 따라 걸으면 어느새 체감온도가 2~3도 낮아진 듯하다. 징검다리와 벤치, 물가 산책로가 어우러져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걸을 수 있다.

최근 성밖숲을 찾은 대구의 한 가족 여행객은 “숲속을 걷는 동안 도시에서 받았던 스트레스가 스르르 녹는 기분이었다”며 “아이들과 함께 왕버들 아래에서 사진도 찍고, 나무 그늘 아래 도시락을 먹으니 마치 시간이 멈춘 듯했다”고 소감을 전했다.

8월의 선물, 보랏빛 맥문동 융단이 깔리는 순간 성밖숲의 가장 특별한 순간은 8월 말부터 9월 초 사이. 왕버들 사이로 길게 이어진 산책로 양옆에 보랏빛 맥문동이 피어난다. 꽃과 꽃 사이를 누비며 사진을 찍는 사람들, 벤치에 앉은 가족들, 손을 맞잡고 걷는 연인들이 어우러지며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이 길은 인생사진 명소로도 손색없다. 아침 햇살이 비추는 시간과 해질 무렵 노을이 내려앉는 풍경은 특히 아름답다.

서울에서 온 한 20대 커플은 “사진으로만 보던 맥문동길을 실제로 보니 감탄이 절로 나왔다”며 “보랏빛 물결 사이를 걷는 기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감성적이었다”고 말했다.

성밖숲 황토길 걷기
△ 가야의 시간을 걷다-성산 고분군 길.

성산 고분군 힐링 트레킹이천 물길을 따라 조금만 더 걸으면 가야시대 유적인 성산 고분군이 펼쳐진다. 야트막한 구릉을 따라 20여 기의 봉토분이 고요히 누워 있는 이곳은 사적 제89호로, 성주 가야국 지배층의 묘역으로 추정된다. 조경석과 흙길로 조성된 탐방로는 고분과 안내판이 조화를 이루며 걷는 이에게 자연스러운 역사 체험의 장이 된다.

정상에 오르면 성주 시가지와 가야산 능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자연과 시간, 고요함과 사색이 어우러지는 이 공간은 성주의 또 다른 표정을 보여준다. 성산 고분군을 찾은 역사 동호회 회원은 “가야 유적지 중 이렇게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걸을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과거로 이어지는 문을 하나씩 여는 기분”이라고 전했다.

한개마을 전경
△ 비채길을 따라 한개마을로….

시간과 일상이 이어지는 길성산 고분군을 지나면 ‘비움에서 채움으로’라는 철학을 담은 비채길이 이어진다. 이 길은 자연과 문화, 삶이 어우러진 감성 산책로로, 구릉과 논, 전통마을을 잇는 풍경 속에 조용히 녹아 있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아 더욱 깊은 여운을 남긴다.

비채길 끝자락에는 조선시대 전통 한옥마을인 한개마을이 자리잡고 있다. 16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택들이 줄지어 있고, 돌담과 흙길, 대청마루와 마당이 여전히 살아 있는 이 마을은 성주의 뿌리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고즈넉한 마을 풍경과 함께 전통문화 체험도 가능해 가족 단위 방문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성주 비채길
※추천 힐링 트레킹 코스 : 성밖숲성산고분군비채길~한개마을이 전체 코스는 약 5.5㎞, 왕복 기준 약 2시간 30분 소요되며 다음과 같은 구간으로 구성된다.

출발 : 성밖숲 주차장 △ 왕버들길 산책 → 맥문동길 걷기 △ 이천 물가 따라 성산 고분군 도착 △ 고분 탐방로 → 정상부 전망 △ 비채길 진입 → 전통마을 풍경 감상 △ 도착 : 한개마을 둘러보기 → 전통문화 체험 △ 복귀 또는 인근 카페, 농촌체험 연계

걷기 코스는 유모차와 함께하는 가족, 혼산객, 사진작가 등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길이며, 특히 가을 단풍철에는 왕버들 단풍과 고분 능선의 붉은빛이 장관을 이룬다.

사진 4, 성주 성산동 고분군길
△ 길 위에서 위로를 짓다

성주는 지금도 걷는 중이다. 이 길은 단순한 산책길을 넘어 성주의 정체성을 품은 공간이다. 자연은 쉼을 주고, 유적은 시간을 알려주며, 사람은 그 길 위에서 다시 살아간다. 누구나 스쳐 지나갈 수 있는 평범한 숲길이지만, 그 길을 걷고 난 뒤의 마음은 평범하지 않다.

부산에서 온 직장인 김 모 씨는 “성주에 이런 조용하고 운치 있는 길이 있는 줄 몰랐다”며 “혼자 걷는 시간이 오히려 위로가 되고, 고요한 숲과 마을이 마음속 깊은 울림을 준다”고 말했다.

이병환 성주군수는 “성밖숲 힐링길과 성산 고분군, 비채길, 한개마을까지 이어지는 이 코스는 성주의 자연과 역사, 일상을 함께 누릴 수 있는 특별한 여정”이라며 “걷기 좋은 도시 성주, 머물고 싶은 숲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속적인 정비와 콘텐츠 확충에 힘쓰겠다”고 전했다. .

김정수 기자
김정수 kjsu7878@kyongbuk.com

성주군 담당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