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바람과 숲길 어우러진 소박·진솔한 풍경 큰 울림

창포 해맞이 공원
푸른 바다와 솔향 머금은 고장, 동해중부선 영덕역에 내리자마자 가장 먼저 반기는 것은 바다에서 불어오는 짭조름한 바람이었다. 동해의 푸른 물결이 끝없이 펼쳐지고, 수평선 위로 부서지는 햇살은 마치 ‘고요한 위로’ 같았다.

이곳은 경상북도 동쪽 끝자락에 자리한 영덕. 복잡한 도심을 잠시 뒤로한 채, 느린 걸음으로 마음을 비우기 가장 좋은 고장이다. 푸른 바다 따라 걷는 길 블루로드영덕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블루로드’다. 총 4개의 코스로 구성된 이 길은 바다와 산, 마을과 사람들이 어우러진 도보 여행의 진수다.

그중 가장 인기 있는 A코스는 강구항에서 시작해 축산항까지 이어지는 17.5㎞의 해안 길이다.

해맞이공원에서는 아침을 맞는 해가 유난히 선명하다. 등대가 바다를 가리키고, 멀리 포말이 부서진다.

해안블루로드해안길
발아래에는 자연이 빚어낸 절벽이 펼쳐져 있고, 길가에는 제철을 맞은 해당화가 소박하게 피어 있다. 때때로 들리는 갈매기 소리와 파도 소리는 음악 대신 풍경을 채운다.

따뜻한 사람들 바다를 품은 삶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마을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게 된다.

축산항 부근에서 만난 김순자 어르신은 갓 손질한 문어를 널고 있었다.

죽도산
“바닷일은 힘들어도, 파도 소리 들으며 사는 게 복이지.” 웃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평온함에 여행자는 잠시 말을 잊는다. 작은 항구마다 어선이 들고나는 풍경은 영덕 사람들의 일상이자 삶이다. 새벽에 출항하고 해질 무렵 돌아와 아이들과 둘러앉아 먹는 식탁은 이들에게 가장 소중한 시간이기도 하다.

바다의 보물 대게와 해산물 여행 중 가장 큰 기대는 단연 ‘영덕 대게’였다.

강구해파랑공원대게축제
강구항 인근 대게거리에서 향긋한 김이 나는 찜통 앞에 앉았다. 살이 꽉 찬 대게 다리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한입 베어 무니, 바다 내음이 입안 가득 번졌다.

고소하면서도 달큼한 대게 살은 단순한 먹거리를 넘어 이 고장의 자부심 그 자체다.

영덕 상대산 관어대와 고래불해수욕장 전경.
대게 외에도 도루묵찌개, 과메기, 해초무침 등 다양한 해산물 요리들은 영덕이 품은 바다의 진미를 잘 보여준다. 이 음식들은 단지 입을 즐겁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이 땅에서 땀 흘린 사람들의 삶을 담고 있다.

영덕군 장수면 산길을 따라 올라가면 천년을 지켜온 문화유산 장육사와 풍력단지 만날 수 있다.

고생대에서 신생대 사이에 형성된 경정리 편마암 지대
신라시대에 창건된 이 사찰은 소박하면서도 깊은 고요가 인상적이다. 바람 소리, 나뭇잎 부딪는 소리에 집중하며 명상을 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속의 복잡함이 잦아든다.

장육사에서 멀지 않은 언덕에는 풍력 발전단지가 있다. 거대한 풍차들이 유유히 돌아가며 이 고장을 지켜주는 듯하다.

이곳은 특히 해질 무렵, 바다와 하늘이 맞닿는 장면이 장관을 이룬다. 자연과 기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이 공간은 영덕의 또 다른 얼굴 이다 .쉼과 사색의 공간 해맞이 캠핑 장 과 송이 산책길 영덕은 바다뿐만 아니라 숲도 아름답다.

영해면 벌영리 메타세쿼어 숲
특히 송이 산책길은 솔 향기 가득한 힐링 공간으로 유명하다. 붉은 흙길 위로 쭉 뻗은 소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가끔 다람쥐가 나뭇가지를 타고 지나간다. 바람 한 줄기에 실려 오는 솔향은 천연 아로마 같다.

해맞이 캠핑장
해맞이 캠핑장은 바다를 정면에 두고 캠핑을 할 수 있는 명소다. 밤에는 별빛 아래 파도 소리를 들으며 고요한 밤을 보낼 수 있고, 아침에는 수평선 위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하루를 맞는다.

이보다 더 완벽한 휴식이 또 있을까. 여행의 끝, 다시 삶으로 여행의 끝자락에서 영덕읍 시장을 들렀다. 제철 농산물과 마른 생선, 토속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의 활기찬 모습에 다시금 생기가 돌았다.

영덕 풍력발전단지와 별파랑 공원
영덕은 거창한 관광지보다는, 오히려 소박하고 진솔한 풍경 속에서 큰 울림을 주는 곳이었다.

“또 올게요.” 속으로 작게 인사하며 돌아서는 발걸음에 어느새 아쉬움이 묻어난다.

이곳에서의 며칠은 분명히 ‘힐링’이었다. 걷는다는 단순한 행위로 삶의 균형을 되찾는 여정, 그 길 위에서 영덕은 가장 따뜻한 안내자가 되어주었다.

고려말 나옹왕사가 창건한 장육사
국가보물로 지정된 장육사 영상회상도
장육사는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나옹선사가 처음 세웠다고 전한다.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산불로 인해 불에 타고 그 후 다시 절을 세웠으나 임진왜란(1592) 때 훼손되어 다시 절을 세웠다. 광무 4년(1900)에 수리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방식으로 건축되었다. 한편 대웅전 내에는 영덕장육사건칠보살좌상(보물 제993호)이 모셔져 있다. 단청을 금단청으로 하여 화려하기 이를 데 없으면서도 색상이나 무늬가 장엄하고 거룩한데, 특히 사천장의 주악비천상과 좌우벽의 보살상벽화는 예술적 가치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최길동 기자
최길동 기자 kdchoi@kyongbuk.com

영덕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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