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진한  기자
▲ 권진한  기자

영주시 가흥산업단지에서 벌어진 일은 단순한 기업 매각이 아니다. 한국 산업 자본주의의 민낯이 고스란히 드러난 사건이다. SK스페셜티라는 회사 하나가 소디프신소재에서 OCI로, 다시 SK그룹을 거쳐 사모펀드 한앤컴퍼니로 넘어가는 과정을 지켜보면, 자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선명하게 보인다. 6000여 억 원을 투자해 2조 원의 차익을 챙기고, 다시 2조7000억 원에 매각하는 과정에서 지역은 무엇을 얻었을까.

대답은 명확하다. 위험만 남았다. 반도체 특수가스는 1급 위험물질이다. 소량 누출만으로도 지역사회에 치명적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물질을 다루는 공장이 지난 10년간 여러 차례 안전사고를 일으켰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자본은 수익을 극대화하려 하고, 그 과정에서 안전 투자는 늘 후순위로 밀린다.

문제는 소유 구조가 사모펀드로 바뀌면서 더욱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사모펀드의 본질은 기업 가치를 높여 재매각하는 것이다. 이는 단기 수익 극대화를 위한 모든 수단이 동원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추가 설비 증설과 생산량 확대는 필연적이고, 그 과정에서 안전은 또다시 뒷전으로 밀릴 것이다.

영주시는 대기업 투자 유치라는 명분 아래 신속한 인허가를 제공했지만, 정작 지역이 얻은 실질적 성과는 제한적이었다. 일자리 창출 효과도 미미하고, 지역 경제 파급효과도 기대에 못 미쳤다. 남은 것은 위험뿐이다.

이런 구조는 영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전역에서 반복되는 ‘유치-확장-매각’의 순환 고리가 바로 이것이다. 자본은 위험을 지역에 남긴 채 수익을 거두고 떠난다. 지역사회는 위험을 떠안고 살아간다. 이것이 우리가 지켜온 산업 발전 모델의 실체다.

반도체 산업이 한국 경제의 핵심 동력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위험의 불균형 분배 구조를 더 이상 외면할 수는 없다. 필수 소재 산업의 위험이 특정 지역에 집중되는 현실을 방치한다면, 언젠가 돌이킬 수 없는 재앙으로 돌아올 것이다.

해법은 명확하다. 첫째, 고위험 산업 시설에 대한 지역 전용 안전 규제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일반적인 소방설비로는 특수가스 사고에 대응할 수 없다. 특화된 소방 체계와 전문 인력이 필수다. 둘째, 지자체가 단순한 인허가 기관을 넘어 실질적인 안전 규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지역사회와의 위험 공유 메커니즘을 구축해야 한다. 형식적인 주민 설명회가 아니라 보호 장비 지급, 위기 대응 매뉴얼 공유 등 구체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자본의 발걸음은 가볍다. 수익이 나면 머물고, 위험이 커지면 떠난다. 하지만 지역사회는 그 자리에 남아 위험과 함께 살아간다. 이제 당국이 나서야 할 때다. 자본의 수익보다 시민의 안전이 우선되는 산업 생태계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지속가능한 발전의 출발점이다. 위험을 떠안고 사는 것과 위험을 선택하며 사는 것은 다르다.
 

권진한 기자
권진한 기자 jinhan@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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