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곽성일 편집부국장
▲ 곽성일 편집부국장

대구 망우당공원에 세워진 곽재우 장군 동상이 수년째 녹슨 채 방치돼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시민들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최초로 의병을 일으켜 국난 극복의 상징이 된 ‘홍의장군’의 기념물이 무관심 속에서 흉물로 변해갔다는 점에서, 이번 문제는 단순한 시설 관리 부실을 넘어선다. 역사를 기리고 공동체의 자긍심을 키워야 할 상징물이 행정의 관심에서 밀려난 현실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곽재우 동상은 1972년 후손들과 곽망우당기념사업회가 주도해 설치됐다. 공원 이름 역시 장군의 호에서 유래한 만큼, 지역사회가 세운 대표적 상징 공간이다. 그러나 이후 지자체 차원의 정기적 관리 체계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2022년 동구청이 한 차례 세척 작업을 한 것이 전부였고, 최근 3년 동안은 사실상 손길이 닿지 않았다. 후손과 주민의 민원이 제기된 뒤에야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동구의회 질의와 언론 보도를 거쳐 대구시 보훈선양팀이 뒤늦게 세척에 나섰다. 그러나 매년 반복되는 관리 계획은 여전히 마련되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드러난 것은 지방정부의 구조적 한계다. 동구와 대구시는 예산과 관리 주체를 둘러싸고 적극적 조치를 하지 못했고, 과거 관리 기록도 충분히 정리돼 있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지역민의 기억과 자긍심이 담긴 상징물이 행정의 사각지대에 방치된 셈이다. 반면 서울 광화문에 세워진 이순신 장군 동상은 서울시의 관리 체계 속에서 정기적으로 세척·보수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수도권 기념물은 안정된 관리 체계 안에서 지켜지는 반면, 지역 위인의 동상은 지방 재정과 단기 대응에 의존하는 불균형이 드러난다.

곽재우 동상 사례는 결코 예외적이지 않다. 전국 곳곳에 세워진 독립운동가, 의병장, 지역 위인들의 기념물은 설치 당시의 의미와 달리 시간이 흐르며 관리 사각지대에 놓이는 경우가 많다. 지자체는 ‘예산이 없다’는 이유를 내세우고, 중앙정부는 국가 지정 기념사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손을 놓는다. 그 결과 기념은 기념일 행사 위주로 단발성에 그치고, 일상적 관리와 교육적 활용은 뒷전으로 밀린다.

기념물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다. 시민들이 매일 마주하는 공간에 서 있는 동상은 역사적 기억을 생활 속에서 체감하게 하는 매개다. 관리가 끊기면 그 의미는 빠르게 퇴색한다. 녹슨 동상을 바라보는 시민의 실망은 곧 사회가 역사적 인물을 대하는 태도의 반영이며, 미래 세대의 역사 인식에도 직결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기념행사가 아니라 지속적 관리다. 지자체는 매년 관리 계획을 수립하고 예산을 안정적으로 반영해야 한다. 단순 세척을 넘어 보존·교육·홍보로 이어지는 종합적 관리 체계를 세워야 한다. 중앙정부 역시 지방에 맡겨둔 상태를 개선하고, 보훈·문화재 관리 체계 속에 지역 위인 기념물을 포함할 필요가 있다. 국가적 차원의 인물이라면 그 기념도 지방의 재정 여건에만 의존해서는 안 된다.

곽재우 장군은 붉은 옷을 입고 의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인물이다. 그의 동상은 단순한 금속상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의 기억과 자존심을 상징한다. 그 상징이 녹슬어 가는 모습은 단순한 부식이 아니라 사회의 무관심이 남긴 흔적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늦은 세척 한 번이 아니라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관리다. 역사적 자산을 지키는 일은 곧 공동체의 품격을 지키는 일이다. 기억을 소홀히 하는 사회는 미래를 준비할 자격도 없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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