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품은 연못, 연꽃으로 다시 피어나다
도심의 속도를 잠시 내려놓고 싶은 날, 사람들은 숲으로 향한다. 길은 사람을 품고, 걷는 이는 그 길 위에서 위로를 얻는다. 경북 성주 초전면 뒷미지와 칠선~용성 숲길은 그런 여정의 출발점이다. 여름이면 연꽃의 향연이, 가을이면 능선 위의 사색이 여행자를 맞이한다. 이곳은 단순한 자연 풍광을 넘어, 성주의 역사와 삶, 그리고 공동체의 기억이 스며든 ‘살아있는 풍경’이다.
△ 100년 세월을 품은 뒷미지 - 연꽃의 부활.
뒷미지는 원래 농업용 저수지였다. 조선 정조 원년, 마을 뒤 산세가 인재를 길러낼 명당이라는 뜻에서 ‘후산(後山)’이라 불렸고, 이는 곧 ‘뒷미’라는 이름으로 전해졌다. 연못은 오랜 세월 동안 마을의 젖줄이자 생활의 중심이었으나, 1970~80년대 태풍으로 토사가 쌓이며 기능을 잃고 방치됐다. 축사가 들어서고 폐수가 흘러들던 시절, 뒷미지는 고통의 기억을 안고 있었다.
그러던 2013년, 대대적인 생태공원 조성이 이뤄졌다. 주민들은 “군수공원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을 정도로 반신반의했지만, 지금 뒷미지는 성주의 대표적인 여름 관광지가 됐다. 7천여 본의 백련과 홍련이 다시 뿌리내렸고, 저수지 위에는 데크와 구름다리가 놓였다. 분수와 육각정자가 들어서면서, 뒷미지는 ‘죽어가던 연못’에서 ‘살아있는 공원’으로 거듭났다.
여름이면 사진작가와 여행자가 몰린다. 연못 중앙 데크 위에서 흰 원피스를 입은 아이가 연꽃을 내다보는 순간, 한 여행자는 “이 풍경만으로도 하루의 무게가 가벼워진다”고 적었다. 뒷미지는 그렇게, 자연의 회복과 사람의 기억을 함께 품은 공간이 됐다.
△능선 위에서 만나는 사색 - 칠선~용성 숲길.
뒷미지에서 발걸음을 옮기면 이어지는 숲길이 있다. 초전면 칠선리와 용성리를 잇는 약 3.4km의 칠선~용성 숲길이다. 한국관광공사의 ‘두루누비’에도 소개된 이 길은 난이도 ‘쉬움’으로 분류되지만, 풍경만큼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다 보면 초전면 들녘과 참외 비닐하우스가 바다처럼 펼쳐진다. 저녁 무렵이면 해가 기울며 은빛 물결처럼 반짝인다. 숲길 한가운데 정자에 앉으면, 바람이 잎을 흔드는 소리와 새소리만 남는다. 현지 주민은 이 길을 두고 “숲과 나의 밀당 같다”고 했다. 오르막은 땀을 통행세처럼 요구하지만, 내리막은 그 값보다 더 큰 여유를 돌려준다. 그래서 이 길은 ‘사색의 길’이라 불린다.
접근성도 뛰어나다. 뒷미지, 못안마을, 서원골, 대티고개 등 여러 입구가 있어 체력과 일정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왕복 7.5km를 걸어도 좋고, 구간별로 나눠 걸어도 된다. 다만 숲길 내부에는 매점이나 화장실이 없어 간단한 물과 간식은 챙겨야 한다.
△걷고 난 뒤, 따뜻한 한 그릇의 위로.
길 끝에는 따뜻한 한 끼가 기다린다. 칠선리의 ‘장반장칼국수’는 인스타그램에서 ‘성주촌두부집’으로 알려진 숨은 맛집이다. 국산 콩을 직접 갈아 만든 촌두부, 고소한 들깨칼국수, 여름철 시원한 콩국수는 숲길 여행자의 피로를 단숨에 씻어낸다. 야채전과 촌두부 조합을 곁들이면, 성주의 여름은 입안에서 완성된다.
한 여행자는 “숲길에서 땀을 흘린 뒤 들이킨 콩국수 한 모금이야말로 최고의 보상”이라며 웃었다.
길 위에서 만난 자연과 사람, 그리고 음식이 만들어내는 삼박자가 성주 여행의 묘미다.
△더 깊이 즐기는 주변 명소.
성주는 뒷미지와 숲길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지만, 여기에 주변 명소를 곁들이면 하루 여행 코스가 더욱 풍성해진다.
천연기념물 왕버드나무 숲이 펼쳐진 성밖숲, 전통 한옥과 고택이 살아 숨쉬는 한개마을, 조선의 왕실 유산을 간직한 세종대왕자태실은 모두 20분 이내에 접근 가능하다.
조금 더 발길을 넓히면 대가면 옥련지 생태공원과 포천계곡, 성주호, 무흘구곡이 기다린다. 옥련지에서는 백련이, 무흘구곡에서는 기암괴석과 옛 선비들의 풍류가 이어진다. 여기에 성남식당의 양배추 김치 칼국수 같은 지역 맛집까지 더하면 하루 일정은 알차게 채워진다.
△ 삶을 품은 길, 성주가 전하는 메시지.
뒷미지의 연꽃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다. 방치와 침체, 그리고 부활의 역사를 품은 존재다. 숲길의 오르막과 내리막도 단순한 길이 아니다. 삶의 굴곡을 은유하는 풍경이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자연을 본다기보다 자기 자신을 들여다본다.
한 여행객은 “뒷미지의 연꽃은 내 마음 속 오래된 기억을 깨우는 듯했고, 숲길의 바람은 앞으로 나아갈 용기를 주었다”고 소감을 남겼다.
성주 뒷미지와 숲길은 그렇게, 자연과 역사, 사람의 이야기가 겹쳐져 ‘한여름의 선물’이 된다. 도심의 속도를 내려놓고 이 길을 걷는 순간, 여행자는 알게 된다. 진정한 힐링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이 땅의 길 위에 있다는 것을.
◇성주 뒷미지 찾아가는 길.
대구에서 성주로 들어서는 길은 쉽다.
달구벌대로 30번 국도를 타고 대황교차로를 지나 경산교 삼거리에서 좌회전, 초전·용성 이정표를 따라가면 참외 모양의 못안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그 뒤로 연꽃이 가득한 뒷미지가 펼쳐진다. 주차장과 화장실, 공연장, 포토존이 잘 갖춰져 있어 가족 단위 여행객도 편히 즐길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