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형기 영양담당 기자
▲ 정형기 영양담당 기자

지난 3월 영양을 뒤흔든 대형산불.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을 돕겠다며 전국에서 구호품이 모였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도록 그 구호품이 어떻게 쓰였는지 군민은 알지 못한다. 대신 남은 것은 불신과 의혹, 그리고 언론을 향한 군의 날 선 반응이다.

한 기부자는 영양군청 자유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피해자 지원용 구호품이 피해 없는 마을에도 배부됐다”, “축제 현장에서 기부품으로 보이는 생수가 쓰였다”는 폭로였다. 구호품 보관이 정식 창고가 아닌 집하장에서 이뤄져 도난·폐기 위험에 노출됐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이는 단순한 푸념이 아니다. 기부자의 신뢰를 저버렸는지 따져 묻는 정당한 문제 제기다.

정작 군이 내놓은 답은 “사실과 다르다”, “정상 지급됐다”는 변명뿐이었다. 구호품 접수와 배부 내역을 공개하면 될 일을, 끝내 밝히지 않았다. 그러더니 보도가 나가자 군수는 기자들에게 전화를 걸어 “팩트체크를 했느냐”, “익명 기부자는 없다”, “기사가 과하다”는 식으로 따졌다.

논란의 핵심은 투명성인데, 군이 보여준 것은 언론에 대한 겁박이었다. 이것이 과연 책임 있는 행정의 모습인가.

자유게시판에는 곧바로 군을 두둔하는 글이 올라왔다. “군수는 도지사에게 칭찬받는데 왜 일부 언론만 공격하느냐”는 논리였다. 급기야 “보도한 매체 중 한 곳이 기사를 삭제했다”는 허위 사실까지 덧붙였다. 근거 없는 말로 언론을 흔들고 의혹을 ‘정치 공세’로 몰아간 셈이다.

이는 논란의 본질을 흐리고, 기부자의 정당한 문제 제기를 왜곡하는 행위다.

구호품 문제의 본질은 단순하다. 얼마나 들어왔고, 어디에 보관했으며, 누구에게 나눠줬는지 내역을 공개하면 된다. 그 최소한의 투명성을 군이 외면하는 순간, 의혹은 불신으로 자라고, 기부문화 전체가 흔들린다.

군은 지금 언론을 탓할 때가 아니다. 스스로 밝혀야 할 기록을 내놓지 않고, 문제 제기자를 공격하는 모습이야말로 군민이 “구린내가 난다”고 느끼게 하는 이유다.

재난 구호품은 행정의 재량이 아니다. 시민의 선의가 모여 이뤄지는 신뢰의 산물이다. 이를 관리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투명한 공개뿐이다. 영양군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언론을 향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군민 앞에 자료를 내놓는 것이다.

언론을 ‘군수 흠집내기’로 몰고 가는 순간, 피해자는 또다시 소외된다. 행정의 책임은 기부자의 뜻을 지키는 데 있지, 군수의 체면을 지키는 데 있지 않다.
 

정형기 기자
정형기 기자 jeonghk@kyongbuk.com

경북교육청, 안동지역 대학·병원, 경북도 산하기관, 영양군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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