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욱 논설주간
▲ 이동욱 논설주간

10월 경주 보문관광단지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는 그 어느 때보다 역사적 의미가 크다. 세계 무역 전쟁이 본격화하고 미·중 대결이 격화되며 신냉전 구도가 굳어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첫 미·중 정상회담이 열리기 때문이다. G2 정상이 신라 천년 고도 경주에서 대좌하게 돼 세계사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회의 장소인 ‘보문(普門)’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다. ‘보문’은 불교 경전 금강경의 ‘보문품’에서 따온 것으로 “모든 이에게 열려 있는 문”을 뜻한다. 보문은 불법(佛法)조차 고정된 실체가 아니며 집착을 버릴 때 누구나 해탈의 길로 들어설 수 있다는 통찰을 전한다.

금강경 보문품의 ‘내가 법을 설한다는 사실조차 집착’이라는 가르침은 오늘날 국제사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 이익을 더 챙겨야 한다’는 독점적 사고에서 벗어나야 자유무역과 지속가능 성장, 기후 대응 같은 난제를 풀 수 있다는 교훈이다.

또한 보문품의 “중생은 중생이 아니며 단지 이름일 뿐”이라는 선언은 중생의 고정된 실체조차 부정한다. 국제정치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중국,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이라는 이름에 갇히지 말고, 인공지능 시대와 기후위기라는 공동의 도전에 직면한 ‘가능성의 공동체’임을 자각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이름이 아니라 실질을 보라는 금강경 보문품의 이 가르침은 경주 APEC이 추구해야 할 이상이다.

‘보문’이 담은 이 같은 원융회통(圓融會通)의 철학은 대립과 갈등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이는 국제사회가 보호무역주의와 지정학적 갈등의 미몽에서 깨어날 것을 가르친다. 경주 ‘보문(普門)’에서 열리는 이번 APEC은 이름 그대로 세계로 열린 문이다. 신라의 터전에서 국제사회가 자유와 협력의 새로운 문을 활짝 열기를 기대한다.
 

이동욱 논설주간
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논설주간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