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반대편으로 떠나기로 했다 오버
널 떠나기로 했다 오버
엔진이 툴툴거리는 비행기라도
불시착하는 곳이 너만 아니면 된다 오버
열대 야자수 잎이 스치고 바나나투성일 거다 오버
행복하자면 못할 것도 없다 오버
죽이 끓고 변죽이 울고 이랬다저랬다 좀 닥치고 싶다 오버
원숭이 손을 잡고 머리 위 날아가는 새를 벗삼아
이구아나처럼 엉금엉금이라도 갈 거다 오버
왜 그렇게 쥐었다 폈다 꼬깃꼬깃해지도록 사랑했을까 오버
사랑해서 주름이 돼버린 얼굴을 버리지 못했을까 오버
엔꼬다 오버
삶은 새로운 내용을 원하였으나
형식밖에는 선회할 수 없었으니
떨어지는 나의 자세가 뱅글뱅글 홀씨 같았으면 좋겠다 오버
그때 네가 태양 같은 어금니가 반짝 눈부시도록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오버
지구는 속눈썹으로부터 흔들리는 풍경으로부터
추억을 모아주고 있지만
태어나 참 피곤했다
벌어진 입을 다물려다오 오버
내 손에 쥔 이 편지를 부치지 마라 오버
희망이 없어서 개운한 얼굴일 거다 오버
코도 안 골 거다 오버
눅눅해지는 늑골도 안녕이다 오버
미안해 말아라 오버
오버다 오버
[감상] “세상을 떠나기 전, 제가 해설을 쓴다는 소식에 기뻐했다는 말을 전해 들으며 당신은 끝까지 상냥하고 친절한 분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당신은 지금 여기에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남긴 시집이 우리에게 남았어요. 그것으로 당신이 우리 곁에 있다고 저는 믿어보려 합니다… 당신은 저만의 시인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사랑받는, 사랑받을 시인이니까요.” 시집 해설을 읽다가 눈물이 핑 도는 특별한 경험을 했다. “지구 반대편”에서 이윤설 시인이 해설을 써준 박상수 시인에게 활짝 웃으며 “너무 기쁘다 영영 고맙다 오버”라고 텔레파시를 보냈을 것이다. 이승과 저승이 연결되어 있다면 이런 아름다운 인연 때문이리라. <시인 김현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