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왕실 창고가 텅 비었다. 속주와 군에서 세금을 내지 않았다. 곳곳에서 도적이 들끓고 반란도 일어났다. 국가재정이 궁핍해 대책이 시급했다. 진성여왕은 사태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진골이 장악하고 있는 정치로는 희망이 없다고 보았다. 정치와 사회 개혁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그녀는 승부수를 찾는다. 6두품인 최치원을 주목했다.
‘토황소격문’을 써 당나라에서 이름을 떨진 그는 고국 신라 발전을 위해 귀국했다. 하지만 진골들은 그를 배척했다. 지방 관서를 전전해야 했다. 진성여왕은 낡은 체제 개혁에 그가 적임자라고 보았다. 개혁방안 제시를 명한다. 그는 ‘시무 11조’를 올린다.
관리들의 부정부패 엄벌과 함께 과거제 실시, 조세 제도의 합리화와 형벌의 공정성 확보를 제안했다. 특히 형벌은 신분이나 권력에 따라 달라지지 않도록 엄정히 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골들의 분노를 부른다. 퇴락을 거듭하던 신라가 내부 정비를 통해 재도약할 수 있는 기회는 그렇게 날아갔다. 그리고 통일신라는 20년 뒤 멸망하고 후삼국으로 갈라진다.
한·중 정상회의 직후 열린 국빈만찬에서 시진핑 주석이 경주 출신인 고운 최치원 선생의 시 ‘범해(泛海)’를 답사에 올렸다.
“바다에 배 띄우니 구름과 파도 아득하고/ 산에 오르니 풀과 나무가 드물구나/ 해는 저무는데 홀로 돌아감을 잊었네”
귀향길의 그는 ‘범해’에 부푼 희망을 담았지만 후일 현실의 벽 앞에서 좌절하는 그의 모습이 예언처럼 어린다. 진골이 그를 중용하고 시무 11조를 받아들였다면 역사는 어떻게 됐을까. 시 주석은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 방중 때도 고운의 시를 인용했다. “해동의 하늘은 맑고 티가 없다.” 고국 개혁의 꿈이 가득했던 때였다. 혁신이란 희망을 안고 배에 오른 청년 최치원의 상기된 얼굴이 지금인 듯 스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