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전 TBC 보도국장
▲ 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전 TBC 보도국장

절집에서 수행하다 포기하고 하산하는 수도승이 간혹 나온다. 법정 스님이 이들에 대한 분석을 한 적이 있다.

“들뜨기 쉬운 봄에 나온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되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봄철에 온 사람과 가을이나 겨울에 온 사람이 다르다는 것이다. 봄 출가자는 바랑을 챙겨 쉽게 절집을 떠나지만 가을과 겨울 출가자는 어지간해서는 물러서지 않고 정진한다는 이야기다.

만추(晩秋)다. 단풍세상이다. 여름 흔적에 집착해 푸른색을 지키려 애쓰는 잎도 있다. 하지만 오래 갈 수 없다. 찬바람이 용납하지 않는다. 추억은 퇴색되고 희망은 메말라 갈 것이다. 올 단풍이 화려하지 않다는 핀잔에도 잎은 잦았던 여름비를 탓하지 않는다. 묵묵히 긴 여행 채비를 할 뿐이다. 잎도 봄에 나왔기에 봄 출가자를 닮았다. 때가 되면 미련 없이 떠날 것이다.

“죽음은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조건이다.”

프랑스 여류 작가 시몬 드 보부아르는 ‘종말 없는 불멸의 존재 보다 시간의 흐름 속에서 변화하는 나약한 존재가 더 아름답다’고 했다. 그는 소설 ‘모든 사람은 죽는다’에서 영원불멸의 인간 레이몽 포스카를 창조한다. 포스카의 독백은 기대와 반대다.

“나는 영원을 얻었지만, 그 영원은 끝없는 공허일 뿐이다.”

그는 600년을 산다. 지인들이 죽어갔다. 하지만 그는 죽을 수 없다. 불멸은 그에게 축복이 아니라 형벌이다. 보부아르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만 인생은 의미가 생긴다”고 결론 짓는다. 죽음이 아름다운 삶의 조건인 것이다.

봄 출가자들을 절집으로 이끈 것은 생동하는 봄기운이었다. 이 기운이 쇠잔해지면 쉽게 흔들린다. 하지만 소멸의 계절에 나선 이는 허망함에 대한 수용성이 높다. 세상살이는 어차피 한 조각 ‘뜬구름’인 것을. 하릴없이 인생무상을 돌아보는 낙엽의 계절, 만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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