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 이정태 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2025경주APEC의 대성공을 축하한다. 경북의 작은 도시 경주가 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된 초대형 국제행사를 성공리에 치렀다. 참으로 대단하고 뿌듯하다. 찾은 손님과 맞은 시민 모두 미소와 웃음이 가득했다. 경미한 사고 한 건 없이 무탈하게 행사가 마무리되었다. 다행스럽고 감사하다. 세상 곳곳에 전쟁과 내란이 발생하고 크고 작은 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지구촌의 상황을 고려하면 회의 기간 경주는 천국이고 행복의 오아시스였다. 덕분에 인류는 잠시나마 안전함과 평온함 그리고 행복한 미래를 그리는 시간을 가졌다.

경주 APEC이 무탈하게 진행될 수 있었던 공로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꼼꼼하고 세심하게 애써주신 분들 덕택이다. 더운 여름 동안 길을 단장하고 가로수에 수액을 매달고 회의장을 짓고 마당을 쓸었다. 혹시나 멀리서 오시는 손님들이 불편하고 불쾌할까 저어하여 정성을 다해 하나하나 챙겼다. 노고에 깊이 감사드린다.

2025 경주APEC 정상회의는 만족한 결과를 도출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지 않았다는 아쉬움은 있지만 참여 회원국의 만장일치로 경주선언을 채택하는 성과를 올렸다. 경주선언을 계기로 지구촌이 당면한 지속 가능한 발전, AI시대로의 대전환, 인구구조변화라는 문제에 공동 대응하고, 현실주의가 지배하는 지구촌의 갈등과 분쟁이 종결되면 좋겠다.

이번 경주APEC정상회의 과정에서 가장 주목받은 최고의 이벤트는 트럼프-시진핑 정상회담이었다. 미중 양국은 회의 직전까지 회의참여가 불투명할 정도로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중국의 희토류 제한, 대두 금수조치와 미국의 관세 폭탄 맞대응으로 양국긴장은 일촉즉발의 위기로 승급되었다. 다행히 트럼프-시진핑은 노련한 정치 고수답게 웃으며 만나 관세전쟁 휴전에도 합의했다. 시-트 대전의 진검승부를 기대하던 청중들로서는 아쉬움이 있지만 다행이었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는 말처럼 미-중의 틈바구니에서 눈치를 보던 주변국들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다. 어쩌면 트럼프-시진핑의 만남은 처음부터 정해진 상수였을 수도 있다. 재집권에 성공한 트럼프, 3연임에 성공한 시진핑, 양자 모두 6년 만의 브로맨스를 학수고대하지 않았을까?

모든 잔치가 그러하듯 경주APEC정상회의의 백미는 상차림이었다. 그중에 가장 재미난 하이라이트는 선물외교였다. 화려한 수사와 사랑 고백보다 더 확실한 청혼이 금가락지인 것처럼 주고받는 선물에는 마음이 응축된다. 말로 하지 못하는 이야기를 선물에 담는다. 이번 선물외교의 대박은 트럼프 대통령을 위한 천마총 왕관모형이었다. 천년 신라의 왕관은 부족연맹체 대표라는 리더의 상징인 동시에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중재자라는 권위의 상징물이다. 아주 공교롭게도 “왕은 없다(NO KING!)”는 반트럼프 구호가 분출하던 시점에 한국 경주에서 천년 권력을 상징하는 왕관을 수여했다. 미국 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각종 쇼프로그램에서 왕관을 비꼬는 조롱이 쏟아졌다. 그 덕분에 천년고도 경주와 신라, 화려한 금관기술이 전 세계에 알려졌다. 더 고마운 것은 트럼프 대통령이 만찬 연설에서 외친 “경주, beautiful city”라는 홍보 멘트였다. 세계 최고의 빅마우스인 트럼프 대통령의 영향력과 SNS의 파급효과를 감안하면 그가 말하는 순간 “경주”는 세계적인 美도시로 규정된 것이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대스타를 경주 홍보요원으로 고용하려면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도 불가하다. 한국은 덤으로 무궁화 대훈장도 준비했다. 집권1기때 행한 한반도 평화에 대한 감사이지만 동시에 향후 트럼프의 한반도 평화 메신저 역할에 대한 주문이기도 하다.

트럼프 대통령의 답례품도 재미있고 의미심장하다. 야구방망이와 공,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야구방망이는 회초리를 상징하는 경고일 수도 있고 아태지역에서 방망이를 휘두를 권리를 의미할 수도 있다. 핵추진잠수함, 마스가(MASGA)는 기술동맹에 대한 제안일 수도 있고 한국의 축적된 기술을 강탈하려는 미끼일 수도 있다. 만약 트럼프의 선물이 실제로 실현된다면 한국은 핵국가로 변신하고, 완벽한 방위체계를 갖춘 완전국가로 거듭날 수 있다.

중국과 한국의 선물은 얼핏 보기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 바둑판, 화장품, 샤오미 휴대폰, 문방사우, 다구, 통화스와프 연장 등이다. 그러나 의미를 새기면 동양 문화권에서만 알 수 있는 교감이 가득하다. 바둑판은 19×19=361개의 격자가 그어진 판이고 그 위에 흑백 바둑돌로 세싸움을 벌이는 동양권의 놀이이다. 바둑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철학을 함축하고 있으며 사방 360도(天元)에 1을 더한 수 즉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가로세로 19줄이 만든 격자무늬 361개를 풀면 3+6+1=10, 1+0=1이다. 1은 새로운 시작, 화합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중국 측이 준비한 샤오미 휴대폰과 문방사우는 소통을 의미한다. 통화가 안되면 편지로 하자는 제안이다. 문방사우의 붓은 전통 동양문화의 전유물이다.

미국과 중국 양측으로부터 구애를 받는 대한민국이 대단하다. 6·25전쟁의 폐허를 새마을운동으로 부활시킨 힘이 다시 경주에서 발현되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님의 목숨을 건 투혼과 실무진들께 존경을 표한다. 입이 아니라 목숨을 바치는 애국(愛國)을 솔선수범 실천하였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경주APEC을 계기로 중견국에서 문화선진국으로, 동시에 첨단 AI중심국으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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