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립아트코리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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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은 마지막 잎새마저 뜯어 달아난다
그러나 세상에 남겨진 자비에 대하여
나무는 눈물 흘리며 감사한다

길가의 풀들을 더럽히며 빗줄기가 지나간다
희미한 햇살이라도 잠시 들면
거리마다 풀들이 상처를 널어 말리고 있다

낮도 저녁도 아닌 시간에,
가을도 겨울도 아닌 계절에,
모든 것은 예고에 불과한 고통일 뿐

이제 겨울이 다가오고 있지만
모든 것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들이다

​[감상] 이원 시인의 『물끄러미-이원의 11월』(난다, 2024)을 읽는다. 열두 명의 시인이 릴레이로 써나가는 열두 권의 책. 매일 한 편, 매달 한 권, 1년 365가지 이야기가 실렸는데 이원 시인은 ‘11월’을 맡은 모양이다. “잠들기 전에는 시집을 읽는다. 다른 계절에는 새벽에 시집을 읽는다. 그런데 11월에는 밤에 읽는다… 다른 계절에는 시집을 열어놓기도 하지만 11월에는 시집을 꼭 닫는다. 시가 춥지 않았으면 좋겠어.”와 같은 따뜻함, “세상은 차곰차곰하지, 캐럴은 들려오지, 처음부터 끝까지 설렌다니까.”와 같은 발랄함이 있어서 좋다. 참고로 ‘차곰차곰하다’는 ‘차갑고 시원하다’라는 뜻의 충청도 방언. “지독히도 덥더니 입추 지나자 바람이 차곰차곰한 게 살맛 난다”라는 예문이 있다. 따뜻함과 발랄함으로 11월을 건너가는 모든 이들은 “겨울을 이길 만한 눈동자”를 가지게 될 것이다. <시인 김현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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