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를 건너 고요로”…불안한 시대의 마음 회복을 담은 85편 수록
8개 부 구성의 실험적 편집…“시인은 마지막 순간까지 써야 한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자 3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도종환 시인(70)이 공직에서 물러난 뒤 처음으로 시집 ‘고요로 가야겠다’(열림원)를 펴냈다. 시인은 지난 11일 서울 종로구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세상의 소요를 고요로 건너가는 길, 그 길을 안내하는 것이 시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새 시집은 분주한 현실 속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마음을 ‘고요’라는 감각으로 다독이며, 격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에 대한 시인의 응답을 담고 있다.
△“소요에서 고요로 이동해야…분노의 시간은 지혜를 앗아간다”
도 시인은 “우리는 매일 놀랄 일, 참기 어려운 일, 분노를 자극하는 일들에 둘러싸여 있다”며 “소요에 휩쓸린 상태에서는 경솔해지고, 이성적 판단도 흔들린다”고 말했다.
이어 “더 지혜로워지고 슬기로워지려면, 스스로 고요의 시간을 확보해야 한다”며 “문학과 시는 그 고요에 이르는 길을 열어주는 안내자”라고 설명했다.
시집의 표제작 ‘고요’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등장한다.
‘바람이 멈추었다 / 고요로 가야겠다 / 고요는 내가 얼마나 외로운 영혼인지 알게 한다…’
도 시인은 “사람답게 살기 위한 절제와 겸손, 깊은 생각은 결국 고요 속에서 길러진다”고 말했다.
△ 85편의 시를 여덟 개의 ‘의미 덩어리’로 구성한 실험적 편집
이번 시집은 총 85편의 시를 ‘이월’, ‘고요’, ‘달팽이’, ‘슬픔을 문지르다’, ‘사랑해요’, ‘당신의 동쪽’, ‘손’, ‘끝’까지 8개 부로 나눠 실었다.
특히 각 부를 열어주는 8편의 시는 1∼5행으로 나누어 여러 쪽에 걸쳐 천천히 펼쳐지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전시장의 입구 벽에서 작품의 힌트를 보여주듯, 독자를 서두르지 않고 시의 세계로 데려가는 장치다.
도 시인은 “시는 원래 찬찬히 읽어야 한다”며 “빠르게 넘기는 대신 한 장, 한 장 머무르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컨대 ‘이월’은 9쪽에 나눠 싣고, 뒤에서 전체 시를 다시 한 번 보여주는 방식으로 배치되어 있다.
△ 슬픔·분노·소음…범속한 현실을 견디는 마음의 기술
시집에는 현대인이 겪는 불안과 슬픔, 외로움, 분노를 어떻게 견딜 것인지에 대한 시인의 성찰이 이어진다.
‘슬픔을 문지르다’에는 다음과 같은 장면이 있다.
‘아침 햇살의 밝고 따스한 부분이 따라 들어와 / 고여 있는 슬픔의 기포를 터뜨리고 / 천천히 데리고 나왔다’
도 시인은 “소음·대립·충돌·혐오가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일수록, 더 지혜롭고 절제된 마음이 필요하다”며 “그 마음을 안내하는 일이 시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뒤 “읽고 쓰는 일만 했다…시인은 언제나 현역”
도 시인은 지난해까지 3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고, 문체부 장관(2017∼2019)을 지냈다.
정치권을 떠난 뒤에는 “본래 작가로서 해야 하는 일로 돌아갔다”며 “책 읽고 글 쓰는 일에 온전히 매달렸다”고 했다.
그는 현재 1천 매가 넘는 원고를 바탕으로 산문집을 준비 중이다.
“읽고 쓰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온 것이 고맙다. 열 편을 쓰면 열 번 회복된다”고 덧붙였다.
시인의 말처럼, 그는 앞으로도 멈추지 않을 뜻을 밝혔다.
“나는 40년 동안 시를 썼지만, 아직 한국 시의 대표작을 쓰지 못했다. 선배들만큼 좋은 시를 썼느냐고 스스로 묻는다. 아직 아니라면, 지금부터라도 써야 한다. 신경림 선배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시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도종환 시인의 ‘고요로 가야겠다’는 소요와 소음이 지배하는 시대에, 어떻게 마음을 회복하고 인간다움을 지켜낼 것인지 차분히 안내하는 시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