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록장치 없고 음성장치도 파손…속도 감소·실속 진입 등 복합 요인 추정
실속 경보장치 부재·훈련 누락 드러나…해군 “조종사 충원·안전장비 개선하겠다”
해군이 지난 5월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해상초계기(P-3CK) 추락 사고의 ‘결정적 원인’을 규명하지 못했다. 비행기록장치가 없는 구형 기종이었던 데다, 유일한 단서였던 음성녹음장치도 파손돼 복구가 불가능했던 것이 조사 한계로 지적됐다. 다만 조사 결과 훈련 누락, 경보장치 부재, 엔진 내부손상 가능성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개연성이 제기됐다.
민관군 합동사고조사위원회는 13일 국방부에서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기계적·인적·환경적 요소가 동시에 작용한 것으로 추정한다”고 밝혔다. 조정권 조사위원장은 “조종사의 과실 여부를 단정할 증거는 없지만 에너지 관리와 기체 자세 조정이 충분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사고는 지난 5월 29일 오후 포항비행장에서 이착륙 훈련 중이던 P-3CK 1대가 이륙 약 6분 만에 활주로 남동쪽 1.6㎞ 지점에 추락해 조종사와 승무원 4명이 숨지면서 발생했다. 사고기는 제주기지에서 항법훈련과 인원 이동을 마치고 포항에서 1차 이착륙 훈련을 수행한 뒤 다시 2차 이륙에 나선 상태였다.
조사위가 확보한 자료는 대부분 기지 주변 CCTV 영상이었다. 레이다 음영구역에서 사고가 발생해 항적이 남지 않았고, 충격과 화재로 손상된 음성녹음장치도 복원에 실패했다. 비행기록장치가 장착되지 않은 기종이어서 추가 정보 확보가 불가능했다.
CCTV 분석 결과 사고기는 1차 상승 단계까지는 정상적인 속도와 자세를 유지했으나, 이후 선회 과정에서 속도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고도 상승이 둔화됐다. 받음각은 과도해졌고, 정상 선회에 필요한 160노트에 못 미치는 107노트 시점에서 실속 진동이 발생했다. 속도가 67노트까지 떨어진 순간 기체는 급강하에 들어갔다. 실속 발생 지점은 약 950피트(290m)였으며, 회복을 시도한 움직임이 마지막 장면에서 포착됐으나 고도가 턱없이 부족했다.
기계적 요인에 대한 조사는 엔진, 프로펠러, 연료, 조종·유압계통 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대부분 충돌 전까지 작동 상태였던 것으로 확인됐으나, 1번 엔진 내부의 파워터빈 1단에서 이물질로 인한 손상이 발견됐다. 조사위는 “조종사 주의력을 분산시켰을 가능성은 있으나 실속을 유발할 정도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안전 장비의 한계도 확인됐다. 사고기에는 실속 경보장치가 없었고, 받음각 지시계는 조종사가 즉시 인지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었다. 조종사는 실속 진입 전 나타나는 진동을 난류와 구별하기 어렵고, 받음각 증가 여부도 지연 인지했을 가능성이 있다.
인적 요인으로는 훈련 체계의 공백이 지적됐다. 비행교범에는 실속 회복훈련과 조종불능 회복훈련이 포함돼 있지만, 이번 사고기 조종사뿐 아니라 대부분의 P-3 조종사가 해당 훈련을 받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기 때문이다. 해군은 “교육 과정 도입 당시부터 훈련 항목이 누락돼 관행적으로 실시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환경적 요인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조사위는 CCTV 영상에서 지면 충돌 직전 기수가 들리는 장면이 포착된 점을 근거로 조종사가 민가나 건물과의 충돌을 피하려 했던 것으로 분석했다. 저고도에서 깊은 강하각으로 진입한 상황에서 회복에 필요한 고도 확보가 불가능했던 셈이다.
해군은 사고를 계기로 P-3 조종 인력 부족 문제도 드러났다고 밝혔다. 해군 관계자는 “기체 한 대당 조종사가 약 1.2명 수준에 불과해 교육훈련 일정 확보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해군은 재발 방지를 위해 실속·조종불능 회복훈련의 정례화, 엔진 연소실 검사 주기 단축, 받음각 지시계 위치 개선, 실속 경보장치 추가 장착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비행안전관리 절차 보완과 조종사 충원도 병행한다.
P-3CK 기종의 비행은 현재 중단된 상태이며, 해군은 시험비행과 단계적 훈련비행 과정에서 안전성이 확인된 이후 재개 시점을 결정할 방침이다. 해군은 “순직 장병 4명의 명복을 빈다”며 “비행안전 강화를 위해 모든 조치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