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에서 ‘지방 우선·지방 우대’ 원칙을 천명하고 지방자율재정 규모를 3배 가까이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중앙지방협력회의에서 “수도권 일극 체제를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 산업·기술 경쟁력의 근간인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의 구조를 들여다보면 이 같은 약속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크다는 것을 실감하게 된다.

지난해 집행된 전체 R&D 국비 25조 원 가운데 64.5%가 수도권과 대전에 집중됐다. 서울·경기·인천이 34.4%, 대전이 무려 30.1%를 차지했다. 반면 지방에서도 산업 기반이 비교적 탄탄한 대구가 2.9%, 경북은 3.4%, 부산이 4.4%에 불과하다. 더 심각한 문제는 수도권 집중도가 해마다 더 심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60.4%였던 수도권·대전 비중은 지난해 64.5%까지 상승했다.

이 같은 현실은 단순한 ‘분배의 문제’를 넘어 국가 산업경쟁력 전체를 약화시키는 구조적 리스크로 이어진다. 연구개발 투자는 인재가 모이고 기업이 성장하게 하는 핵심 수단이다. 수도권과 일부 연구도시에 R&D가 고착화하면 지역 기업의 기술혁신 기반이 약화되고, 청년 인재가 수도권으로 유출되는 악순환을 부른다.

정부가 지역 자율재정 확대, 공공기관 이전 확대 등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지역의 미래를 바꾸려면 지방재정만 늘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지역 산업의 경쟁력은 결국 지역의 기술혁신 역량에서 나온다. 지역 산업에 맞춘 전략 R&D 투자, 지역 기업과 대학·연구기관을 묶는 혁신 클러스터 구축, 지역 특화분야 중심의 대형 국책 연구 프로젝트 배분이 뒷받침돼야 한다.

연구와 산업이 가까이 붙어 있을 때 기술혁신 속도가 빨라지고 생산성이 높아진다. 수도권의 과밀 연구 생태계가 아니라 지역 산업 현장 가까운 곳에서 R&D가 이뤄져야 하는 이유다. 철강·이차전지·바이오·자동차·정밀기계 등 지역의 전략 산업은 이미 존재한다. 문제는 이를 뒷받침할 지역 R&D 생태계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서도 수도권에 집중된 R&D 분배 구조를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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