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 유적 발굴이 한창이었다. 예상 못한 철삿줄이 출토됐다. 그리스 고고학자가 흥분했다. “고대 그리스 때 유선 전화를 사용했다는 확고한 증거입니다.” 로마 고고학자는 우울했다. 로마가 그리스 문명에 뒤처졌다는 사실에 자존심이 상한 것이다. 그래서 로마 유적지 발굴을 제안했다. 하지만 발굴에서 철삿줄은 나오지 않았다. 그리스 학자가 더욱 우쭐댄다.
“그것 보시오. 당시 로마에는 유선 전화가 없었다는 명백한 증거요.” 가만히 듣고 있던 로마 고고학자가 발끈한다. “무슨 소립니까? 철사가 나오지 않은 것은 그때 이미 무선전화를 사용했단 확실한 증거요. 그리스가 고작 유선전화를 쓸 때 로마는 벌써 무선전화를 쓴 겁니다.” 한 사안을 놓고 바라보는 시각 차이가 클 때 가끔 인용되는 조크다.
서울 종묘 앞 세운상가 재개발을 둘러싼 논란이 점입가경이다. 1970년대 ‘대한민국 산업화의 상징’으로 불리던 세운상가는 건물이 낡아 20여 년 전부터 재개발이 추진됐다.
하지만 유네스코 문화유산인 종묘의 경관을 헤친다는 이유로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이 와중에 대법원이 서울시 손을 들어 줘 개발 가능성이 열렸다. 그러자 문체부가 ‘유네스코 문화유산 취소 우려’를 내세워 반대했다. 서울시는 취소 가능성이 없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여기다 내년 지방선거 구도까지 맞물려 이슈가 정치화 됐다. 이런 논쟁은 그리스 로마 유·무선전화 조크처럼 명분과 주장이 뒤엉키며 실체적 진실이 묻히기 마련이다.
답답한 것은 유네스코가 사전에 취소 여부를 판단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과만 본다. 어떻게 개발하느냐가 관건이다. 지금까지 취소된 3건 모두 개발 명분이 있었다. 죽어 가던 도시가 되살아난 리버풀이 대표적이다. 그들은 불가피성을 강조했다. “리버풀은 유산을 잃고 생명을 되찾았다.” 유산을 잃지도 않고 생명도 되찾을 방법은 없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