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 세부 내용이 담긴 ‘조인트 팩트시트’가 확정됐다. 한국 철강·알루미늄 업계가 우려하던 50% 관세는 끝내 그대로 유지됐다. 정부가 목재와 일부 파생상품에 대한 관세를 조정했다는 점을 성과라고 설명했지만 국내 철강업계에 돌아온 결과는 사실상 미국에 ‘백기 투항’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미국이 연초 25%였던 관세를 지난 6월 50%까지 끌어올린 이후 업계는 협상을 통한 완화 가능성에 한 가닥 기대를 걸었지만 무산됐다.

철강은 올해 1~9월 대미 수출액이 전년 대비 16% 줄었다. 업계가 “대미 수출은 포기 단계”라고 말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하다. 포스코와 현대제철 등 국내 철강사들은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해외에 수출해 왔다. 그중 미국은 4조 원 규모의 핵심 시장이었다. 관세 50%는 가격 경쟁력을 사실상 무력화시키는 치명적 장벽이다.

한국무역협회가 발 빠르게 산업부·관세청과 함께 ‘철강·알루미늄 관세 대응 설명회’를 열었지만 이는 사후 대응을 위한 기술적 조언에 불과하다. 통관 요령, 원산지 증빙, 사후 검증 대응 방안을 아무리 정교하게 안내해도 50%라는 구조적 장벽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더구나 미국은 파생상품 407개 품목에 대한 심사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어 철강·알루미늄뿐 아니라 변압기·볼트 등 중간재 수출 기업까지 타격이 커지고 있다.

국내 철강 시장 역시 중국산 우회덤핑 공세로 시장이 무너지고 있다. 중국산 냉연강판은 사실상 국내가보다 20~30% 저렴하게 들어오고 있다. 여기에 내년부터 본격 강화되는 EU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부담까지 더해지면 한국 철강업계는 수출·내수·환경규제라는 삼중고로 ‘산업 붕괴’의 벼랑 끝에 서게 됐다.

정부와 여당은 속없이 대미 관세 협상에 자화자찬할 때가 아니다. 철강 등 타격이 가시화 되고 있는 분야의 보완책이 급하다. 특히 지연되고 있는 ‘K-스틸법’은 11월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 철강은 AI·반도체·전기차의 기반을 이루는 뼈대 산업이자 국가 안보 차원의 산업이다. 관세 압박, 덤핑 공세, 환경 규제가 동시에 몰아치는 지금, 정부와 국회가 적극 지원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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