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지금 경제 질서의 구조적 변곡점에 서 있다. 돈이 곧 권력이자 안전망이던 시대는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인류의 경제사는 언제나 ‘희소한 것’을 두고 벌어진 경쟁의 기록이었다. 토지가 희소하던 시대에는 토지를 가진 자가 귀족이 되었고, 자본이 부족하던 산업혁명기에는 공장을 세운 자가 부를 독점했다. 그러나 오늘날 전 세계는 역설적으로 돈조차도 희소하지 않은 ‘과잉의 시대’로 이동하고 있다. 과잉의 국면에서 경제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가치의 방향을 묻기 시작한다.
AI와 자동화의 확산은 노동의 의미 자체를 더욱 강하게 흔들고 있다. 과거 자본 축적의 원천이 인간 노동이었다면, 이제 생산의 중심은 알고리즘과 데이터가 지배한다. 한계비용은 0에 가까워지고, 상품과 정보는 넘쳐난다. 유동성이 넘치고 이자가 사라지며, 심지어 중앙은행의 신용까지 흔들리는 지금의 흐름은 전통적 자본주의의 정의가 균열되는 순간이다. 부의 본질이 물질에서 ‘관계’와 ‘신뢰’, 그리고 ‘의미’로 이동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역사의 전환점마다 기술은 늘 새로운 질문을 던져왔다. 증기기관은 노동의 개념을 재구성했고, 전기는 시간의 구조를 바꿔놓았다. 오늘날 AI는 인간의 지능과 감정의 영역까지 침투하며 ‘인간답다’는 기준을 다시 묻고 있다. 기업과 사회가 경쟁해야 할 영역도 바뀌었다. 기술을 얼마나 잘 만들었느냐보다, 인간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존중하느냐가 성장의 성패를 가르는 조건이 되고 있다. 결국 기술의 혁신보다 인간 이해의 혁신이 더 중요한 시대다.
앞으로의 부는 ‘소유의 크기’보다 ‘관계의 질’에서 비롯될 가능성이 크다. 돈이 흔해질수록 신뢰는 희소해지고,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진심은 귀해진다. 소비자는 더 이상 가격이나 기능만이 아니라 기억과 공감, 그리고 신뢰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택한다. 사회적 신뢰를 축적한 기업, 공동체적 가치를 실천하는 조직, 타인의 삶에 의미를 남기는 개인이 장기적으로 더 큰 경제적 평가를 받게 된다. 궁극적으로 AI 시대의 마지막 자산은 ‘자기 자신’이며, 인간적 품격이 새로운 경제적 통화가 된다.
우리는 이제 ‘돈의 시대’에서 ‘의미의 시대’로 넘어가고 있다. 과거의 경제가 효율을 최우선 가치로 삼았다면, 미래의 경제는 공감·연결·책임이라는 새로운 축으로 재편될 것이다. AI가 대부분의 일을 대신하는 순간, 경제는 다시 인간에게 질문을 돌려준다. “당신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개인과 기업만이 다음 시대의 주인이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