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APEC 정상회담 이후 한일 관계에 대한 기대가 있었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가 “미래지향적이고 안정적 발전”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말이 채 식기도 전에 현실은 냉혹했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의 일본 급유가 전격 취소됐다. 이유는 독도 인근 훈련이었다. 동시에 일본은 ‘영토·주권전시관’을 확장 개관했다. 유화적 발언 뒤에 감춰진 독도 도발. 이것이 일본 외교의 본색이다.
우리는 ‘독도는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으니 괜찮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이 안일함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착각이다. 침묵하는 순간, 그것은 분쟁에 대한 동의로 해석될 수 있다.
독도 문제를 ‘분쟁’이라 부르는 순간, 우리는 일본의 전략에 말려드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독도를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한 고유 영토로 간주하며, 애초에 분쟁의 대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일본은 지속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며 독도를 ‘분쟁 지역(Disputed Area)’으로 만들려 한다. 이것이 바로 국제사법재판소(ICJ) 회부의 명분을 쌓으려는 일본의 전략이다.
외교부와 경북도가 전시관 폐쇄를 촉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항의만으로는 부족하다. 일본은 지금 이 순간에도 ‘분쟁 조장 기록’을 축적하고 있다. 블랙이글스 급유 취소는 단순 도발이 아니다. 독도 문제를 한일 관계의 ‘불안정 요소’로 국제사회에 각인시키는 치밀한 전략이다.
국제법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2008년 페드라 브랑카 섬 분쟁에서 ICJ는 역사적 권원보다 ‘지속적인 실효적 지배 증거’에 더 무게를 뒀다. 입법, 행정, 사법 행위로 주권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본은 이미 알고 있다. 어업권 허가, 광업세 소송 등으로 행정·사법적 증거를 쌓고 있다.
반면 우리는 어떤가. 독도 개발 사업은 표류하고 예산은 미집행된다. 심지어 독도 접근을 제한하는 법률까지 있다. 주권 행사의 질을 스스로 낮추고 있는 셈이다. 독도 의용수비대가 목숨 걸고 지킨 그 땅에서, 우리는 오히려 한 발 물러서 있다.
하지만 본질을 잊지 말아야 한다. 1454년 《세종실록지리지》는 울릉도와 우산(독도)이 우리 땅임을 기록했다. 1690년대 안용복은 일본에 건너가 독도가 조선 땅임을 확약받았다. 그러나 1905년 러일전쟁 와중, 일본 제국주의는 무력으로 한반도를 짓밟으며 독도를 강탈했다. 독도 문제의 본질은 지도나 문헌의 싸움이 아니다. 제국주의 침략의 증거다. 1946년 연합국 최고사령관 지령(SCAPIN) 제677호가 독도를 일본 영토에서 제외한 것은 바로 이 불법성을 인정하고 빼앗긴 땅을 돌려준 것이다. 1953년 독도 의용수비대가 목숨 걸고 지킨 것은 단순한 바위섬이 아니라 제국주의에 짓밟힌 주권 그 자체였다. 일본은 지금도 그 강도질의 영수증을 합법이라 우기고 있다. 정의는 우리 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첫째, 독도를 ‘지키는 땅’에서 ‘활용하는 땅’으로 전환해야 한다. 해양 과학 연구를 확대하고, 방파제 등 인프라 구축을 완료하며, 과도한 접근 제한 법률을 개정해 국민의 방문을 늘려야 한다. 독도가 국민의 ‘생활 영역’임을 증명하는 것이 가장 강력한 실효적 지배 증거다.
둘째, 침묵을 거부해야 한다. 일본의 영토전시관 확장에 외교 항의만으로는 부족하다. 국민들 스스로가 독도의 역사적·국제법적 근거를 다국어로 제작해 국제사회에 적극 알려야 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가 주권 행사의 증거가 된다. 독도를 직접 방문하고, 독도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공유하는 것. 그 마음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실효적 지배의 증거가 된다.
필자가 8년째 ‘독도코리아’ 채널을 운영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안용복의 후예로서 독도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침묵이 아닌 ‘라우더 보이스(louder voice)’로 독도를 지켜나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