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동욱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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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히 낙엽 지는 소리/ 비가 내리나 해서/아이 불러 문밖 나가보라 했더니/개울 남쪽 나무 끝에 달이 걸렸다 하네” 가을밤 정취를 그린 송강 정철의 ‘산사야음(山寺夜吟)’이다. 조선조 김도징은 금강산 ‘산영루’에 올라 “맑은 물 하얀 바위 속세를 떠나 있고/높다란 누각에 올라보니 반쯤 허공에 걸린 듯/ 늙은 스님 울 밖의 물 길어오니/금강의 가을빛이 표주박에 담겼구나”라 읊었다. 조선조 정조 때 이병휴도 가을밤에 홀로 앉아 한 수 지었다. “오두카니 앉은 채 밤은 깊어가는데/추당에 밤기운이 청량하구나/하늘 한복판 저 달빛 아름다워서/보는 이 없어도 마냥 밝구나”

당나라 이태백은 “고개 들어 밝은 달 바라보고/고개 숙여 고향을 생각한다” 했고, 같은 당나라 시인 ‘정곡’은 “뜨락 가득 낙엽이 쌓여도 스님은 개의치 않는데/ 속세 사람들은 지는 잎 하나 보고도 마음 아파하네”라 읊었다. 또 당나라 ‘유우석’은 “맑은 하늘 학 한 마리 구름을 제치고/내 마음속 시정을 이끌고 높이 높이 치솟네” 했다. 청나라 ‘장초’는 “조물주가 술에 취해 붓 휘어잡고/가을을 봄처럼 그려놓았네”라며 단풍을 노래했다.

당의 명 문장가 ‘한유’는 아들에게 독서를 권하는 시를 써 보냈다. “가을이 오니 장마도 개이고/청량한 기운이 마을 가득 넘치네/등불도 점점 가까이할만하니/책을 펼치기도 좋구나”. 등불을 밝히고 책 읽기 좋다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가을은 마냥 아름답고 즐거운 계절만은 아니다. ‘추선(秋扇·가을 부채)’도 있다. 한나라 성제 때 황제의 사랑을 받던 ‘반첩여’란 후궁이 있었는데, 후에 황제의 총애를 잃고 ‘뒷방 늙은이’가 돼서 신세 한탄을 하며 “저 부채도 가을이 되니 쓸모없구나/내 처지가 저와 같은 것을” 했다. 울긋불긋 단풍도 ‘가을 부채’처럼 쓸모없이 땅에 뒹굴 것을 생각하면 마음 한구석이 뻥 뚫린 듯 쓸쓸해지는 가을이기도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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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논설주간 donlee@kyongbu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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