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 이건수 전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장·경북대의대 명예교수

지난 주, 10회 동아시아 혈우병 포럼(EAHF; East Asia Hemophilia Forum, 나라시, 11월 13~15일)에 참석하기 위해서 일본을 다녀왔다. 한국에서 처음 제의하고 2008년 첫 개최 후 1년마다 일본, 타이완, 중국이 이어받아 개최한 후에는 2년 마다 개최하기로 하여, 2013년에는 다시 한국에서 개최하게 되었고 2023년에 다시 세 번째 한국이 개최하였으며 2025년은 일본 차례였다. 그러니 4개국 혈우병 관련 진료, 연구하는 교수들은 더 없이 반가운 얼굴로 맞이하였다. 물론 연령의 차이는 10년 가까이 차이가 있지만 국제적인 모임에서는 서로가 마음을 열어 놓고 건배하기도 하였다. 국제적 학술단체의 이름이 말하는 바와 같이 주된 것이 혈우병에 관한 치료와 연구가 주된 것이었지만, 다른 출혈성질환도 발표의 대상이 되어 폭 넓게 진행된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혈우병 이외에 폰빌레블란트병에도 중점을 두어 큰 제목으로 이 질환에 대해서도 한 세션을 배정하여 집중적으로 논의하는 부분을 두었다. 필자는 특히 이 분야에 관심을 두어 대학에 재직 시에도 소아에서 발생한 환아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두 편의 논문을 작성하였으며, 퇴임 후에도 소아뿐 아니라 성인에서도 출혈 증상이 있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의심을 하고 검사를 진행하여 그 결과를 2018년 스코틀랜드 Glasgow에서 개최된 세계혈우연맹(WFH) 학술대회에서도 포스터 발표(Why we have to suspect and diagnose von Willebrand disease early?)를 하였다. 이 당시 유럽에서 개최되는 혈액관련학회에 참석해 보면 제약사들의 선전을 위한 조그만 부스 외에 색다른 부스를 발견할 수 있는데 유럽여성 출혈질환단체에서 제공한 것이다.

표시 슬로건은 ‘여성에게도 출혈질환이 있다는 것을 상기해주세요’ 이다. 모두들 이 부스를 지나쳐 버리지만 필자는 단번에 이들이 표시하는 본 뜻을 알고 있었다. 혈우병은 유럽에서 제일 문제가 되고 연구되어 온 질환이다. 그 이유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혈우병의 보인자로 알려졌고 그 후손들이 각국의 왕가와 혼인을 맺으면서 유럽 다수의 왕가에 환자가 발생되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러시아 마지막황제의 아들이 혈우병 환자임이 알려지면서 많은 일화를 남기고 있다. 그래서 유럽 각 나라에서 이 질환 연구가 활발하게 이뤄졌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혈우병에 비해서 100배나 많이 발생하며 남녀 1:1의 비율로 발생되는 폰빌레블란트병을 앓고 있는 여성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던 것이다. 이 질환이 1924년에 핀란드 내과의사인 Eric von Willebrand에 의해서 대가족 내 5세 여아의 출혈질환을 유전성 유사혈우병(hereditary pseudohemophilia)이라고 명명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가계도 조사에서 유전성이지만 혈우병(그 당시 개념으로는 혈우병은 남자에게서만 발생된다고 믿음)과 다르게 여아에게서 발생되었다고 해서 우선 병명을 그렇게 하였으며 1926년 학회지에 보고하였다. 그 후 바로 제자들에 의해서 첫 보고자의 이름을 질병 명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그 후 1950년대에 이 질환의 원인이 혈액성분 중 하나의 단백질이상임이 밝혀지고, 1972년에 vWF를 정제할 수 있었다. 1985년 vWF의 구조와 수많은 유전자 이상이 이 질환의 다양성을 나타낸다고 알려졌다.

그 후 1980년대 중반에 국내에 처음 알려지게 되었으며. 필자가 1981년에 전임강사로 발령을 받아 본격적으로 소아혈액종양 분과에 전념하기 시작했으니 비슷한 역사가 시작되었다. 국내에서 1991년 가족 3례에 대한 증례보고가 있었으며, 필자는 1998년 환아 18례를 진단하고 발표하였으며, 10년 후 만성면역혈소판감소증 17례 중 5례에서 이 질환이 중복됨을 보고하였다. 그 후 이 질환의 연구는 뜸하여 환자 진단에 관한보고는 많지 않다. 이 질환의 세부 분류를 위한 유전자검사와 다량체(multimer)검사도 동시에 이뤄졌다. 모든 유전질환이 그렇지만 성염색체와 상염색체 유전으로 나눠지며, 우성과 열성으로 분류되어 결국 4가지 형태로 대별되며, 그 외 미토콘드라아 유전이 있다. 이 질환의 유전자는 12번 염색체 장완에 존재하므로 상염색체 유전이고 우성과 열성 모두의 형태로 유전된다.

Eric von Willebrand 의사가 진단한 여아의 가족은 11명 자녀의 대가족이며 그 중에서 9번째에 해당이 된다. 그런데 문제는 부모 모두가 환자의 가계였다. 11명의 자녀 중에서 이미 3명은 출혈과 관련하여 사망을 한 상태였다. 물론 이 질환과 혈우병의 차이 중 하나가 후자에 비해 이 질환의 출혈증상은 점막에서 주로 발생하여 잦은 코피와 생리과다 등으로 후자의 뇌출혈, 관절출혈 등 심각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이 가계의 경우는 상식을 뛰어 넘는 사망 환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이유를 필자는 두 가지 사실로 해석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우성유전의 경우는 열성유전질환에 비해서 이환율은 높지만 생명에는 지장을 초래하지 않는다는 사실이고, 그 이유가 인체의 세포에는 부모로부터 받은 각각의 두개의 상동염색체 중에서 하나만 이상 유전자라고 해도 질병으로 표현되는 경우를 말하므로 이환율은 높지만, 다른 정상 유전자가 이 기능을 어느 정도 보존하므로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것이고, 열성유전자는 부모로부터 받은 두개의 유전자 모두가 같은 이상이 있어야 질병으로 표현되는 것이므로 이환율은 상대적으로 낮지만 이 유전자의 역할을 보완해 줄 유전자가 없으므로 생명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이다. 그런데 이 질환에서 상염색체 우성 환자끼리 결혼할 확률은 1%x1%이므로 1/10,000의 기회가 온다. 다시 말하면 10,000쌍의 결혼 중 1쌍은 이런 경우에 속한다. 이 부부에서 확률적으로 4 형태의 자녀가 출생이 되는데 그 중 한 형태가 부모가 각각 가지고 있는 상염색체 우성 유전자를 모두 하나씩 받아 출생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동형접합우성유전자(homozygous dominant gene)라 하며 자녀 1/4의 확률이다. 즉, 종합하면 이 질환의 60~70%를 차지하는 1형인 경우는 증상이 경하나, vWF를 전혀 생산하지 못하는 3형과 동형접합우성유전자를 소유한 환자는 생명과 직결되는 심한 출혈증상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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