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는 상황·관계 따라 유동적…설명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의 문제”

▲ 지난 8월 열린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장애학과 학위 수여식.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총동문회 제공
▲ 지난 8월 열린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장애학과 학위 수여식.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총동문회 제공

장애인으로서 국내 첫 장애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김영민(42·여) 박사가 자신의 연구 여정과 장애학의 의미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전했다. 오른쪽 팔꿈치 밑 절단과 안면 장애를 가진 그는 개인적 경험을 학문적 성취로 승화시키며,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긴 연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김영민 박사는 자신의 장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며 사회의 인식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오른쪽 팔꿈치 밑으로 팔이 절단된 상지 장애로, 팔의 장애 외에도 두피 손상과 오른쪽 귀 형태가 없는 안면 장애를 갖고 있다”며 “사실 오른쪽 팔도 엄연히 말하면 화상으로 팔이 굽어 붙었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이렇게 늘 장애의 정도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손상 정도가 곧 장애를 말하는 사회를 오랫동안 경험한 탓”이라고 토로하며, 장애를 의료적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에 대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다.

학부는 사회복지학, 석사에서 코칭심리를 전공한 그는 동료상담 현장에서 학문을 적용하는 법을 배웠고, 2007년 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처음 현장가로 활동을 시작했다.

김 박사는 2000년대 초반 사회복지 현장에서조차 장애인에게 자리가 없었던 시절을 회상하며, 이러한 개인적 경험이 장애학 연구로 이어지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동료 상담과 장애인 활동지원사업, 장애인식개선, 인권강사 활동 등을 하면서 장애학에 대해 알게 됐다”며 “현재 근무하는 한국장애인심리지원센터 대표님의 권유로 박사과정에 진학했다”고 밝혔다.

직장인과 학생의 이중생활에 대해서는 “평일에는 직장인으로, 토요일엔 학생으로 살았는데, 주말마다 새벽에 일어나 서울에서 대구를 오가는 일이 쉽지는 않았지만, 즐거웠던 기억”이라고 회상했다.

▲ 김영민 박사가 장애학 관련 발표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장애학과 총동문회 제공
▲ 김영민 박사가 장애학 관련 발표를 진행하고 있는 모습.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장애학과 총동문회 제공

지난 8월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장애학과 박사과정을 마친 김 박사는 ‘장애 정체성과 경계 넘기: 패싱과 가장 전략의 사용에 관한 연구’라는 학위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장애인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 대한 심층 연구와 함께 ‘패싱(Passing·장애를 숨기거나 비장애인처럼 보이는 전략)’과 ‘가장(Masquerading·장애를 드러내거나 과장하는 전략)’ 현상을 다루고 있다.

김 박사는 연구를 통해 장애인의 정체성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자율적인 장애 정체성’은 자신의 장애를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삶을 재구성하는 유형이며, ‘변화 주도적인 장애 정체성’은 기존 사회적 통념과 편견에 도전하며 장애의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려는 특성을 보인다. ‘경계인의 애매한 장애 정체성’은 비장애인과 장애인 사이의 경계에 위치하여 소속감과 불안정성을 동시에 경험하는 유형이고, ‘상호작용적인 장애 정체성’은 타인과의 지속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정체성을 유연하게 조정해 나가는 특성을 가진다.

연구 결과에 대해 김 박사는 “참여자 6명의 생애를 중심으로 질적 연구를 진행한 결과, 장애 정체성은 특정한 유형에 고정되기보다 상황, 시기, 관계적 맥락에 따라 유동적”이라며 “차별과 억압이라는 사회적 조건 속에서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패싱’과 ‘가장’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지난 2023년 진행한 대구대학교 대학원 장애학과 세미나.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장애학과 총동문회 제공
▲ 지난 2023년 진행한 대구대학교 대학원 장애학과 세미나.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장애학과 총동문회 제공

김 박사는 그간의 장애 관련 연구에서 ‘당사자의 목소리’가 빠져 있었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그는 “당사자로서 연구에 참여한다는 것은 더는 연구의 대상에 머무르지 않고 연구 주체가 된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며 “당사자의 다양한 삶 속에서 경험한 차별, 억압 등 불평등한 사회 인식은 문제의식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이론을 검증하고 사회를 변하게 하는 방향을 제시한다고 생각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애학의 정의에 대해서도 “장애학은 사회의 억압된 구조를 드러내고 바꾸려는 실천이자 이론”이라며 “장애인의 권리를 옹호하는 데만 머무르지 않고, 장애를 둘러싼 사회적 장벽과 차별을 해체해 나가는 과정이다. 장애인이 가지는 특수한 문제가 아닌 비장애인 모두가 평등한 삶을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학문”이라고 김 박사는 명확한 견해를 제시했다.

▲ 김영민 박사.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장애학과 총동문회 제공
▲ 김영민 박사. 대구대학교 일반대학원 장애학과 총동문회 제공

김영민 박사는 앞으로의 연구 방향에 대해 “당사자로서의 경험을 연구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면서 그것이 개인적 경험의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동료 장애인들의 경험과 목소리로 연결될 수 있도록 연구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국내 첫 장애인 장애학 박사로서 그의 연구가 장애인 당사자의 목소리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고, 더 나아가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유경 기자
이유경 기자 lyk@kyongbuk.com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