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지구는 우주 공간에 떠 있어서 아래위 구분이 없다. 우리는 관습적으로 북쪽을 위쪽으로 생각하는 통념이 있다. 지구 북반구의 영토가 넓고, 많은 나라가 위치해 있어서 관습적으로 굳어진 것이다. 통상 서양에서 유라시아 대륙을 오른쪽에, 아메리카 대륙을 왼쪽에 그린다. 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의 젖을 빨고 있는 아이처럼 달라붙어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이 서양식 지도를 거꾸로 놓으면 느낌이 확 달라진다. 문재인 정부 때 해양수산부는 “우리나라는 중국, 러시아를 배후로 해 대양으로 나가는 부두 모양이며, 일본은 이 부두를 보호하는 방파제 형태를 띠고 있어 한반도가 해양 진출의 천혜의 요충지임이 확인된다”며 북반부가 밑으로, 남반구가 위로 그려진 지도를 제작해 배포했다. 문 대통령은 “해양으로 뻗어 대륙과 다리가 되는 비전을 갖자”며 청와대에 거꾸로 그려진 세계지도를 내 걸기까지 했다.
이 거꾸로 세계지도는 유래가 깊다. 냉전 시대인 1961년 미국이 핵미사일 사정거리를 나타내는 지도에서 한반도가 대륙의 위쪽에 그려진 지도를 공개했다. 이 지도에서 한반도는 구소련과 중국 동부 영토에 유일하게 육지로 접근할 수 있는 땅으로 그려져 있다.
지난 17일 제이비어 브런슨 주한미군사령관이 거꾸로 그려진 지도를 공개하며 한국의 군사적 역할론을 제시했다. 한국이 북한뿐 아니라 중국, 러시아의 위협을 억제할 전략적 중심축이라고 했다. 그간 북한 방어에 맞춰져 있던 주한미군의 역할이 중국과 러시아를 군사적으로 압박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정부 2기 출범 이후 미국은 ‘동맹 현대화’란 이름으로 한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억지를 넘어, 인도·태평양 안보 현안에도 기여해야 한다는 뜻을 밝혀 왔다. 거꾸로 지도에서 보이는 것처럼 한반도가 미국의 중, 러 억제 전략의 전초기지가 되지 않을 지 우려된다. 영국의 저명한 지리학자 존 브라이언 할리는 "지도는 단순한 현실의 반영이 아니라 권력의 반영이다"라고 했다. 정부의 실용외교가 고난도 시험대에 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