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아름다움이 세상을 덮으리라던
늙은 러시아 문호의 눈망울이 생각난다.
맑은 바람결에 너는 짐짓
네 빛나는 눈썹 두어 개를 떨구기도 하고
누군가 깊게 사랑해 온 사람들을 위해
보도 위에 아름다운 연서를 쓰기도 한다.
신비로와라 잎사귀마다 적힌
누군가의 옛 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아무도 이 거리에서 다시 절망을 노래할 수 없다.
벗은 가지 위 위태하게 곡예를 하는 도롱이집 몇 개
때로는 세상을 잘못 읽은 누군가가
자기 몫의 도롱이집을 가지 끝에 걸고
다시 이 땅 위에 불법으로 들어선다 해도
수천만 황인족의 얼굴 같은 너의
노오란 우산깃 아래 서 있으면
희망 또한 불타는 형상으로 우리 가슴에 적힐 것이다.
[감상]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경주 양동마을 가는 길에 양동초등학교가 있다. 1909년 개교해 2009년 100주년 기념식을 치른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다. 귀한 인연이 닿아 올가을부터 양동초에 근무하면서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몸소 만끽하고 있다. 교정에 뿌리 내린 아름드리나무들의 향연에 마음이 절로 맑아지고 찌든 영혼이 씻기는 듯하다. 특히, 세 그루 은행나무의 자태에 넋이 나갈 지경이다. 늦가을, 세상의 모든 황금빛은 여기서 발원했으리라. 이처럼 아름다운 전원학교에 학생 수가 급감해 참으로 안타깝다. 아이들은 아늑한 마음의 고향이 필요하다. 대자연학교 양동초등학교가 우리 아이들의 보금자리로 제격이다. 지혜로운 학부모의 현명한 선택을 기다린다. <시인 김현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