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시장은 마치 한 편의 긴 드라마 같았다.
5천 년 동안 인류가 사랑해온 금과, 이제 겨우 중학생 나이쯤 되는 비트코인이 정면으로 맞붙은 시즌이었다. 날카로운 기술, 화려한 서사, ETF 자금 유입… 비트코인은 “이제 곧 금을 잡는다”고 외쳤지만, 마지막에 웃은 쪽은 결국 역사였다. 외계에서 날아온 금속 하나가, 지구인이 만든 코드 전체를 다시 눌러버린 것이다.
비트코인은 올해 유난히 피곤한 한 해를 보냈다.
한때 ‘디지털 금’이라 불리며 대체자산의 왕좌를 노렸지만, 시장은 점점 이 자산을 ‘인플레 헤지’가 아니라 ‘고위험 성장자산’으로 다시 분류하기 시작했다. ETF 자금 유입은 줄었고, 기관투자자들의 ‘큰 손’은 쉽사리 움직이지 않았다. 특히 CPI가 오르고 내릴 때도 비트코인은 아무 반응이 없자, 많은 투자자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 “어… 얘, 금이 아니라 나스닥이었네?”
반면 금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올라갔다.
금리 조정, 지정학적 불안, 미·중 긴장 같은 이슈가 터질 때마다 금은 마치 오래된 친구처럼 든든한 존재감을 보여줬다. 게다가 이번 상승을 이끈 건 ETF가 아니라 실물 금 수요였다.
중국·러시아 같은 비달러권 국가들은 달러 대신 금을 쌓기 시작했고, 개인 투자자들마저 ‘현물’을 찾기 시작했다.
이건 단순한 안전자산을 넘어, 금이 다시 국가 간 신뢰의 결제 도구로 돌아가고 있다는 신호다. 5천 년 동안 쌓인 신뢰는 기술 트렌드나 자금 흐름보다 훨씬 깊은 뿌리를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금에게도 고민은 있다.
가격이 너무 빨리 올라 부담이 생겼고, 글로벌 금리가 변하면 조정이 올 가능성이 있다. 지정학적 긴장이 완화되면 금의 매력은 일시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은 전통적으로 “위기 때 제일 먼저 찾는 자산”이라는 역할을 잃지 않는다.
비트코인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오히려 올해는 성장통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앞으로 토큰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고 금융 인프라가 블록체인을 채택하는 순간이 온다면, 비트코인의 역할은 투자 대상에서 금융 플랫폼의 기축토큰으로 한 단계 격상될 수 있다.
역사가 짧지만, 확장성과 기술적 잠재력은 금보다 훨씬 크다.
정리하자면,
올해는 금의 5천 년 서사가 비트의 15년 서사를 잠시 눌러버린 해였다. 하지만 이것이 영원한 승패를 의미하진 않는다. 시장에서는 늘 새로운 챕터가 열린다.
2025년 이후의 진짜 승부는 단순한 가격 경쟁이 아니라,“누가 더 많은 신뢰 네트워크를 확보하느냐”의 싸움이 될 것이다.
5천 년의 금과 15년의 비트, 두 자산의 이야기는 이제 막 더 흥미로운 시즌2를 향해 넘어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