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성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우영진 경사
▲ 의성경찰서 여성청소년계 우영진 경사

한 청소년이 “밖에 나가면 모든 시선이 나를 향하는 것 같다”고 말했을 때, 그 문장은 단순한 불안의 표현이 아니었다.

학대 피해를 겪은 아이들이 사회로 돌아오는 과정이 얼마나 어렵고 긴 여정인지를 보여주는 증언이다.

이들의 회복은 개인의 의지나 용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지역사회가 어떤 구조적 지지망을 갖추느냐가 회복의 속도와 폭을 결정한다.

아동학대 피해 청소년의 회복은 상담이나 치료에 의존하는 단기 과정이 아니다.

학대 경험은 정서·행동·대인관계 기능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장기적 손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회복은 구조적 지원을 전제로 한다.

피해 아동·청소년 상당수는 우울감과 대인기피, 학업 단절, 자립 실패 위험을 동시에 마주한다.

현장에서 축적된 경험은 한 가지를 공통적으로 말한다. 회복의 핵심은 단기 치료보다 지속적 만남, 반복적 경험, 장기적 지지체계다.

‘청춘다락’ 프로그램은 이러한 구조적 필요성을 잘 보여준다.

학대 피해로 은둔하는 생활을 하던 청소년이 상담·약물·사회기술훈련을 통해 일상으로 복귀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변화 과정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요소는 세 가지다.

첫째, 감정 표현 능력 회복이다.

초기에는 “괜찮다”는 말로 감정을 숨기던 아이들이 스스로 감정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둘째, 행동 변화다.

약속 시간 준수나 프로그램 참여처럼 작은 행동이 안정된 일상으로 이어진다.

셋째, 대인관계 변화다.

모든 어른을 경계하던 청소년이 꾸준한 만남을 통해 신뢰를 형성하게 된다.

이러한 변화는 일회성 상담이나 단기 프로그램만으로는 얻기 어렵다.

정책적으로 가장 부족한 부분은 자립 능력과 장기적 사례관리다.

학대 피해 청소년은 학업·취업 경로가 쉽게 단절되는 시기에 놓여 있다.

단순 보호를 넘어 자립정착 프로그램, 직업훈련, 지역 기반 멘토링 체계가 결합돼야 한다.

회복 이후 사회와의 연결이 유지되지 않을 경우, 청소년은 다시 고립이나 빈곤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

피해자의 회복 과정을 지역사회 전체가 공동 책임의 영역으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다.

아동학대 예방에서 주민의 역할 또한 중요하다.

현장에서는 학대 의심 신호가 감지되고도 신고가 늦어 피해가 확대되는 사례가 반복된다고 한다.

표정 변화, 계절과 맞지 않는 옷차림, 반복되는 멍, 과도한 위축 등은 대표적인 학대 의심 징후다.

전문가들은 “작은 이상에도 즉시 112 신고가 가장 쉬운 예방 행동”이라고 강조한다.

이는 주민이 사건 해결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공적 기관이 위험 여부를 확인할 기회를 여는 행위다.

신고의 문턱을 낮추기 위한 지역 단위 교육과 홍보가 필요한 이유다.

정책 대안은 네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지자체·경찰·정신건강기관이 공동으로 장기 사례관리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둘째, 자립정착 지원을 고도화해 학대 경험이 청소년의 취업·학업 단절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민간·지역 네트워크를 활용한 회복 프로그램을 확대해 정서·사회기술훈련을 포함한 통합적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넷째, 주민 대상 학대 의심 신호 인지 교육을 정례화하고 신고 부담을 낮추는 지역 홍보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아동학대는 한 기관이 해결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이다.

장기 지원과 지역의 관심이 결합될 때 피해 청소년의 삶은 다시 사회와 이어질 수 있다.

작은 관심이 결국 큰 회복을 만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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