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미영 경주시 국제협력팀장
▲ 정미영 경주시 국제협력팀장

어제 쓰다 만 글을 다시 소환했다. 왠지 어제와 같은 감정이 쏟구치지 않는다. 글머리가 “모세가 홍해를 가르듯 기적이 연달아 일어났다”로 시작하고 있다.

그렇다. 17일 새벽 3시에 집을 나서, 이 곳 둔황에 자정 너머 도착했다. 비행기를 세 번 갈아탔다. 인천-난징, 난징-란저우, 란저우-둔황.

APEC을 끝내고 중국 출장 준비에 분주했다. 그런데 일정을 시뮬레이션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복병이 튀어나왔다.

세 비행 모두 MU, 동방항공이었다. 같은 항공사라면 수하물은 종착지까지 가는 것이 상식이다. 그런데 뜻밖에도 난징에서 입국 심사를 받고 수하물을 다시 찾아 국내선 체크인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승시간 2시간 10분. 대규모 대표단이 움직이기엔 애매한 시간이었다. 출국 전에 반드시 해결해야 할 난관이었다. APEC을 계기로 친분을 쌓은 중국 외교관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예전에 우호도시 이창시 방문 에피소드를 공유하면서. 별도의 입국 심사없이 수하물이 그냥 따라나왔던 기억을.

그는 동방항공에 연락해 보겠다며, 시정부는 힘들지 모르겠다고 했다. 출발 3일 전 낭보(朗報)가 날아왔다. 난징시 외사판공실에서 공항에 나와 경주시 대표단 의전을 하겠다며. 수하물도 란저우까지 부치겠다고, 표시를 확실히 해둘 것을 당부했다.

인천공항에 도착하자, 동방항공 총괄팀장이 우리 대표단을 안내했다. 동방항공에도 연락이 간 모양이었다. 키가 훤칠한 그는, 일처리가 노련했다. 하지만 여권 사이에 끼워진 티켓이 두 장이었다. 내 계산으로는 세 장이어야만 했다.

그는, 란저우에서 둔황은 연결이 되지 않는다며, 짐을 다시 찾아 체크인을 해야 한다고 했다. 환승시간 3시간 50분. 시간은 충분했지만, 갑자기 피로감이 몰려왔다.

난징공항에 도착하자, 난징시 외사판공실에서 특별 통로로 안내해 줬다. 고마웠다. 동방항공 고위급 간부와 난징시 외사판공실 주임이 귀빈실에서 대표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시장님과 차담을 가졌다. 당연히 화제는 APEC으로 꽃피웠다. 준비해 간 APEC 기념우표와 APEC 한정판 기념품을 전달했다.

난징을 뒤로하고 란저우에 내리자, 동방항공 직원이 피켓을 들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수하물은 직원이 직접 찾아 둔황행 항공편에 옮겨 싣겠다고 했다. 입국 심사없이 다시 특별 통로.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속으로 ‘천사가 또 나타났다’를 외쳤다.

밤 11시 57분, 드디어 둔황공항 도착. 차창 밖 어둠 속에서 간간이 보이는 불빛들을 보며, 집을 나선 지 꼬박 하루가 지났음을 실감했다.

풍성한 꽃다발 세 개가 놓여진 방으로 안내되었다. 둔황 당서기와 둔황 시장님께서 직접 대표단을 환영하기 위해 나오셨다. 눈을 의심했다. 둔황의 환대는 남달랐다. 어제는 하루 종일 둔황 시장님께서 대표단과 함께 움직이셨다.

그리고 어제, 실크로드 거점도시인 경주와 둔황은 새로운 친구의 연을 맺었다. 둔황은 중국 감쑤성 서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실크로드 핵심 관문 도시이다. 시장님께서 “포스트 APEC 국제교류 첫 사업으로, 실크로드 두 도시가 손을 맞잡고 미래로 나가는 역사적인 순간이다”라고 하셨다.

흔히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한다. APEC 성공 개최로 한껏 높아진 경주의 위상을 이제 세계로 힘껏 뻗어나가야 할 때다. 경주는 세계로, 세계는 경주로 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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