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여성들이 한글로 기록한 여행 가사 5편 수록
원문·주석·번역 한 권에 담아 접근성 크게 높여
여성 생활사·문자생활사 연구 사료로 주목
“한글 고전문학 현대어 번역 지속 추진”
한국국학진흥원(원장 정종섭)이 근·현대 시기 여성들이 남긴 장편 기행가사 다섯 편을 현대어로 옮긴 ‘어와 벗님네야 구경가자’를 출간했다. 한국국학진흥원이 소장한 내방가사를 단행본으로 현대어 번역해 발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국문학계와 여성사 연구에서 내방가사의 문학사적 가치가 지속적으로 강조돼 온 만큼, 이번 출간은 고전의 대중 접근성을 넓히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책에는 ‘청량산유산록’, ‘관해록’, ‘종반송별(송별답가)’, ‘관해가’ 등 20세기 여성들이 여행 경험을 가사 형태로 기록한 작품 5편이 실렸다. 기존의 한문 위주 문헌과 달리, 내방가사는 여성들이 한글로 일상을 기록하며 발전시킨 문학이라는 점에서 독특한 지위를 가진다. 이번 번역본은 가사 특유의 운율과 정서를 살리되 현대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문장을 정리해 가독성을 높였다.
또한 책 속 QR코드를 통해 디지털 원문을 바로 열람할 수 있게 구성했다. 원문 영인과 교주본(주석본)도 함께 실어 연구자와 일반 독자가 동시에 활용할 수 있도록 한 점도 특징이다. 원문, 주석, 번역을 한 권 안에 모아 ‘현대 독서를 위한 장치’와 ‘학술적 깊이’를 모두 확보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내방가사에는 근·현대의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여성들이 바라본 자연과 도시, 문물의 풍경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봉화 청량산과 영덕 바다에서 느낀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 경성·인천·포항 등 근대 도시가 풍기는 활기, 기차와 화륜선, 백화점 같은 새로운 문물에 대한 놀라움 등이 여성의 섬세한 시선으로 기록돼 있다. 20세기에 들어 여성들이 ‘내방’이라는 공간적 제한을 벗어나 외부 세계와 접촉하기 시작한 시대적 변화도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특히 내방가사는 남성 중심의 기록문화에서 배제돼 온 여성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어 당시 여성 생활사 연구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한글 보급 이전부터 여성들이 한글을 통해 자신들의 감정과 경험을 기록했다는 점은 여성 문자생활사에서도 주목할 만하다. 문학 작품이면서 동시에 생활 기록물이자 사회 변화를 보여주는 사료로 가치를 가진 셈이다.
한국국학진흥원은 이번 출간을 계기로 내방가사를 포함한 한글 고전문학의 현대어 번역 작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다. 한국국학진흥원 관계자는 “‘어와 벗님네야 구경가자’가 더 많은 시민이 내방가사를 접하는 출발점이 되길 바란다”며 “앞으로도 한글 고전문학을 꾸준히 발굴하고 현대어로 번역해 누구나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번역본은 고전문학을 연구하는 학계뿐 아니라 지역문화 콘텐츠 개발, 한글·여성사 교육, 관광·전시 프로그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여성의 시선으로 기록된 근·현대 여행기는 20세기 한국 사회의 변화상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전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