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삶·시대·현대적 의미 입체적으로 담아 고전의 다층적 세계 재해석
프랑켄슈타인부터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까지
“고전은 지금-여기와 이어지는 살아 있는 텍스트”

▲ 고전의 사계
▲ 고전의 사계

문학평론가 손정수가 스물두 편의 해외 고전을 사계절의 순환 구조 속에서 다시 읽어낸 비평 에세이 ‘고전의 사계’(은행나무, 336쪽)가 출간됐다. 30여 년간 한국문학을 연구해 온 저자는 고전 읽기를 단순한 재독이 아닌 “삶과 삶이 서로를 건너가는 과정”으로 규정하며, 고전이 왜 지금의 독자에게 여전히 유효한지 차분하고 깊이 있게 설명한다.

이 책의 특징은 작품 한 편을 단독으로 다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손정수는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 호손의 ‘주홍 글자’ 등 시대를 넘어 살아남은 고전의 배경과 작가의 생애, 그리고 현대적 재해석 과정을 입체적으로 배치한다. 당시의 사회적 제약, 창작자 개인의 내적 동요, 오늘의 독자가 발견하는 새로운 의미가 한 자리에 겹쳐지며 고전이 품은 층위가 다중적으로 드러난다.

저자는 캐나다 비평가 노스럽 프라이가 제시한 ‘계절의 뮈토스’를 참조해 책을 네 개의 부로 나눴다. 현실의 압력을 넘어 환상과 상상력이 솟아오르는 여름, 삶의 미궁과 서사의 미로를 따라가는 가을, 인간의 고뇌와 시대의 초상을 담아낸 겨울, 그리고 열린 결말과 미래를 향한 재도약을 품은 봄이 그 순서다. 이 배열은 고전을 읽는 일이 한 인간의 성장, 즉 이상과 현실 사이를 오가는 내면적 순환 과정과 닮아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아쿠타가와, 플로베르, 츠바이크, 헤밍웨이 등 작가의 삶과 작품 세계를 나란히 놓아 읽는 대목은 이 책의 압축된 미덕이다. ‘원고지의 지문’에서 작가의 감정과 세계관을 읽어내는 저자의 시선은 비평을 넘어 하나의 서사처럼 읽힌다. 고전이 단지 지나간 시대의 기록이 아니라 지금-여기의 독자에게 말을 거는 살아 있는 텍스트임을 확인하게 한다.

마지막 부 ‘봄’에는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맥카시의 ‘로드’ 등 ‘고전이 된 작품과 고전이 되어가는 작품’이 함께 실렸다. 이는 고전이 특정한 시대에 묶여 있는 개념이 아니라, 독자와 시대의 변화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쓰이고 다시 읽히는 존재임을 말하는 듯하다.

저자는 서문에서 “겨울이 아닌 봄으로 마침표를 찍기 위해 우리는 고전을 읽는다”고 쓴다. 이상으로 향해 가는 인간의 불완전한 여정, 그 미완의 마음이 고전 속에서 늘 새로운 얼굴로 되살아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고전의 사계’는 고전을 다시 읽고자 하는 독자에게 하나의 지도이자, 다시 쓰이는 삶의 사계절을 건너는 안내서로 기능한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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