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출토 유리구슬은 국산·수입 공존, 유리잔·용기는 전량 외래품…신라–체코 공예 공명
TK 관광·문화외교에 ‘빛의 세계사’ 접목 과제…유리 기반 국제 교류·레지던시 가능성 제기

▲ 전시포스터
▲ 전시포스터

서울역사박물관이 주한체코문화원(원장 미샤 에마노브스키)과 공동으로 ‘베셀레 바노체!’전시를 개최한다. 전시는 11월 25일부터 내년 1월 18일까지 서울역사박물관 1층 로비 전시실에서 진행된다.

서울역사박물관의 체코 유리 크리스마스 장식 전시 ‘베셀레 바노체!’는 겉으로는 크리스마스 문화를 소개하는 행사이지만, TK(대구·경북) 입장에서 보면 질문 하나를 추가로 던진다. ‘유리라는 재료는 언제부터 동서 문명을 잇는 매개였는가.’ 답은 멀리 있지 않다. 경주 왕경 일대 고분과 사찰터에서 쏟아져 나온 유리구슬·유리잔이 이미 1,500년 전, 오늘의 체코 공방과 맞닿은 문명 교류의 흔적이었기 때문이다.

▲ 글라소르(GLASSOR)사의 장식 제작 장면  유리 불기 과정
▲ 글라소르(GLASSOR)사의 장식 제작 장면 유리 불기 과정

신라 유리 공예에 대한 최근 성분 분석 결과는 TK 지역 유물의 성격을 보다 분명히 한다. 경주 일대에서 출토된 유리구슬(유리옥)은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목재재·식물재를 사용한 ‘칼륨 유리’ 계통으로, 월성 주변과 사찰터 등에서 유리 재가열·성형 흔적이 확인된 자체 제작품(국산) 이다. 다른 하나는 코발트 청색이나 다색으로 장식된 구슬로, 소다석회유리 계통의 서역·중앙아시아산 수입품으로 판명됐다. 반면 금령총·황남대총 등에서 나온 유리잔·유리병은 예외 없이 로마·사산조 계열 소다석회유리 성분과 취입 성형(blown glass) 기법이 확인돼, 신라에서 제작된 사례는 없고 전량 수입품으로 보는 것이 고고학계 공통된 견해다. 요약하면, TK 땅에서 발견되는 유리구슬은 ‘국산과 수입이 공존’하고, 유리잔·유리용기는 ‘전적으로 외래품’이라는 것이다.

▲ 글라소르(GLASSOR)사의 장식 제작 장면 채색 과정
▲ 글라소르(GLASSOR)사의 장식 제작 장면 채색 과정

서울에 온 체코의 유네스코 무형유산 제작사 RAUTIS와 GLASSOR의 작업 방식은 이 TK 유물들과 구조적으로 공명한다. 체코 장인들은 지금도 유리관을 가열해 구슬을 불어 만들고, 이를 금속선과 결합해 장식으로 완성한다. 신라 장인들 역시 고온에서 유리를 녹이고, 잘라내고, 다시 성형해 구슬을 빚었다. 오늘날에는 체코 보헤미아 숲과 경주 왕경이 전혀 다른 풍경처럼 보이지만, ‘열과 빛, 손의 기억으로 유리를 길들이는 기술’이라는 층위에서 보면 두 지역은 같은 세계사적 언어를 공유한다. 이 지점을 해설하지 못한다면, 서울의 체코 전시는 그냥 ‘예쁜 크리스마스 장식 구경’ 수준에 머무를 위험이 있다.

▲ 글라소르(GLASSOR)사의 장식 제작 장면  건조 과정
▲ 글라소르(GLASSOR)사의 장식 제작 장면 건조 과정

TK 시각에서 중요한 것은 이 유리의 역사를 ‘지금, 여기’의 지역 전략과 연결하는 일이다. 경주는 신라 왕경 복원, 황금문화권 조성, 세계유산·APEC 이후 관광 재편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금관·토기·석조문화재뿐 아니라 유리구슬과 같은 ‘국제 교류의 물질 증거’를 전면에 세울 필요가 있다. 포항·경주를 잇는 해안·내륙 관광축, 동해안과 실크로드 콘텐츠를 결합한 전시·축제 구상 속에, 체코와 신라의 유리 공예를 함께 묶는 국제 교류 프로그램도 충분히 상상해볼 수 있다. 유리를 매개로 한 공예 레지던시, TK 청년 공예·디자인 인재와 체코 공방의 협업은 단순 문화 이벤트를 넘어, 지역 공예·관광 산업과도 자연스럽게 이어질 수 있는 카드다.

▲ 오르넥스(ORNEX)사의 크리스마스 장식
▲ 오르넥스(ORNEX)사의 크리스마스 장식

결국 서울역사박물관의 이번 전시는 TK에게 두 가지 메시지를 던진다. 하나는, 경주 일대에서 출토된 유리구슬·유리잔의 국산·수입 구분을 명확히 인식할 것. 다른 하나는, 체코와 신라의 유리가 보여주는 ‘빛의 세계사’를 경주·포항·대구가 주도하는 동아시아 문화 외교의 언어로 재번역할 것이다. 유리라는 작은 재료는 이미 한 번, 신라 시대에 이 지역을 세계와 연결한 적이 있다. 이제 남은 과제는, 그 오래된 빛을 오늘의 TK 전략 속으로 다시 끌어들이는 일이다.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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