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종, 살아서도 죽어서도 어머니 문정왕후 그늘에 묻히다

▲ 강릉 능침 전경(궁능유적본부)
▲ 강릉 능침 전경(궁능유적본부)

강릉(康陵)은 조선 제13대 명종과 그의 비 인순왕후 심씨의 능이다. 명종은 중종의 둘째 아들로 중종 29년인 1534년 문정왕후 사이에 태어났다. 1545년 이복형 인종(仁宗)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즉위하였다. 즉위 후 8년간 문정왕후가 수렴청정하였고, 1553년부터 친정(親政)을 하였다. 외척을 견제하고자 인재를 고르게 등용하여 선정을 펴보려 노력했으나 1567년 경복궁 양심당에서 34세로 승하하였다. 인순왕후는 청릉부원군 심강의 딸로 명종 즉위년인 1545년에 왕비로 책봉되었고 1551년 순회세자를 낳았으나 세자는 12세에 일찍 죽었다. 명종이 승하한 후 중종의 7번째 아들인 덕흥대원군의 셋째 아들 하성군(선조)이 즉위하자 8개월간 수렴청정을 하기도 하였다. 이후 선조 8년인 1575년 창경궁 통명전에서 승하하였다.

▲ 향로와 어로
▲ 향로와 어로

명종은 12세에 즉위하여 8년간 어머니 문정왕후의 수렴청정에서 벗어나 20세에 친정(親政)을 하게 되었다. 문정왕후와 윤원형을 견제하고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하여 측근 이양(李樑)을 이조판서, 그 아들 이정빈(李廷賓)을 이조전랑으로 기용했다. 그러나 이양 등은 왕의 신임을 믿고 파벌을 형성하여 횡령을 일삼았으며 사림 출신의 관료들을 외직으로 추방했다. 이에 사림들이 반발하였고 이에 이양은 사화(士禍)로 국면 전환을 시도했으나 심의겸(沈義謙)에게 탄핵과 숙청을 당하면서 명종의 친정 체제는 실패한다. 결국 1565년 문정왕후가 죽기까지 20년 동안 자신의 세력 기반을 지니지 못한 채 문정왕후와 윤원형의 전횡 속에서 왕위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 문정왕후가 죽자, 어머니 그늘에서 벗어나 또다시 독립의 날개를 펴고자 한다. 명종은 외삼촌이자 소윤의 우두머리 윤원형과 승려 보우(普雨)를 내쫓고 인재를 고루 등용하여 정치를 하려고 노력했으나, 2년 후 34세의 나이로 승하하면서 뜻을 이루지 못한다. 인순왕후와의 사이에 낳은 순회세자(順懷世子)가 후사도 없이 일찍 죽자, 왕위는 중종의 2번째 후궁 창빈 안씨의 아들인 덕흥부원군(德興府院君)의 셋째 아들 하성군(선조)이 승계한다. 왕비 혈통의 왕위 계승에서 조선 최초 방계 혈통인 후궁의 자식이 왕위를 계승한 것이다.

▲ 강릉 전면
▲ 강릉 전면

명종 강릉의 능제(陵制)는 봉분을 병풍석으로 두르고, 난간석으로 연결한 쌍릉(雙陵)이다. 곡장(曲墻)으로 둘려진 봉분 주위에 석양, 석호 등이 호위하고 있고, 봉분 앞에는 혼유석과 망주석, 문인석, 무인석, 석마, 장명등 등이 배치되어 있다. 능침 아래는 산신석, 제사를 지내는 능의 부속 건물인 정자각, 제관과 왕이 다니는 향로와 어로, 수라간, 비각, 제향 후 지방을 태우는 예감, 신성구역 표시와 잡귀를 막는 대문 역할을 하는 홍살문, 제례의 시작점과 끝점인 판위 등이 조선왕릉의 형식에 맞게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수복방은 훼손되어 터만 남아 있다.

▲ 강릉 후면
▲ 강릉 후면

강릉은 조선왕릉의 풍수적 기본 요소인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충족한 왕릉터로 어머니 태릉보다는 아늑함을 준다. 불암산을 주산으로 청룡이 혈장에 대한 응축이 좋아서 당판의 청룡 선익이 발달하여, 혈장을 응축하고 있다. 뒷산인 현무봉이 낮으나 완만하여 능역을 편안히 받치는 형태이고, 앞쪽으로 완만히 펼쳐지는 평지와 완만한 물길이 형성되어 있어 풍수적으로 ‘밝고 넓은 명당’ 조건에 부합한다. 그리고 좌청룡과 우백호가 안정적이며, 물길이 지나치게 가팔라지지 않는 형태로 길지(吉地)로 볼 수 있다. 그러나 태릉과 마찬가지로 안산이 멀어 혈장이 충분한 안산 반에너지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다. 좌향은 해좌사향(亥坐巳向) 남동향으로 조성한 왕릉이다. 백호 쪽의 당판은 인공으로 조성하여 후부하게 만들었다. 명종의 인생처럼 뛰어남도 없지만, 부족함도 별로 없는 평범하면서 무난한 왕릉이다.

▲ 망주석
▲ 망주석

어엿한 왕릉이지만 근처에 있는 어머니 능인 태릉이 훨씬 더 유명하다. ‘태릉선수촌’이라는 인지도에 태릉이라는 능호 자체가 지명으로 쓰이기도 하고, 태릉에서 이름을 딴 태릉입구역이라는 지하철역까지 있어서 인지도는 유명하다. 이에 비해 바로 근처에 있는 강릉은 태릉의 인지도로 인해 왕릉으로 인지도는 확연히 떨어진다. 죽어서조차 어머니 영향력에 벗어나지 못하고 어미 목소리에 눌려서 숨소리 한 번 못 내고 있는 명종의 강릉이다. 삼육대학교 입구에 제대로 정비가 되지 않은 주차장조차 변변하지 못하다. 평생 어머니 문정왕후의 그늘에서 살았고, 죽어서도 어머니 태릉의 기세에 눌려 있다.

▲ 정자각
▲ 정자각

명종은 정종의 2년, 문종의 2년 예종의 1년 2개월, 인종의 8개월처럼 재위 기간이 짧았던 것도 아니고, 무려 22년간 재위했다. 단종, 연산군, 광해군처럼 쫓겨난 왕도 아닌데도 왕좌에 있으면서도 제대로 권력을 잡아보지 못한 임금이었다. 살았어도 죽었어도 어머니의 치마폭에 주눅이 들어 제 뜻을 제대로 펼쳐보지 못한 존재감 없는 조선 13대 왕 명종과 인순왕후가 영면하고 있는 강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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