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여러분께는 어떤 이미지로 남아 있습니까.
‘바보 노무현’으로 기억 하시는 분 많을 듯합니다. 물론 노짱이라는 친근한 별명도 있지만 ‘바보 노무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별명이 아닌가 합니다.
또 그를 추모하는 영화의 제목도 ‘바보 노무현’이었죠? 왜 이 별명이 생겼을까요. 정말 어리석을 정도로 원칙을 지키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자신에게 굴레가 씌어진 혐의를 견디지 못하고 바보처럼 사망하기까지 했습니다만 참 바보처럼 원칙을 내세우신 분이었습니다..
만약에 노무현 대통령이 돌아가시지 않고 지금 살아 계신다면 우리 정치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을까요?
여당이든 야당이든 좀더 원칙에 충실한 정치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노 대통령은 재임 중에는 지지율이 한 자리수로 추락하기도 했죠?
한나라당에 연정을 제안했을 때 핵심 지지층 마저 등을 돌렸으니까 그럴 수 밖에 없을 듯 합니다.
그런데 갈수록 높은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우리 국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역대 대통령에 대한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박정희 대통령을 넘어 1위를 차지했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습니다. 박 대통령을 뛰어 넘은 겁니다.
어떻게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요?
저는 ‘원칙이 있는 패배가 이기는 길’이라는 그의 신념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는 원칙을 참 많이 이야기 했습니다.
2006년에 인터넷 포털사이트 대표들과 간담회를 했습니다. 이 때 이야기를 한 번 회상해 보고자 합니다.
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균형 시스템이 마련돼야 비로소 민주주의 제도가 설 수가 있다.”
너무도 당연하죠? 체크 앤 밸런스.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 중에도 기본입니다.
그런데 야당이 주장해야할 것을 권력을 잡고 있는 대통령이 이야기한 겁니다. 이상하죠? 이해가 됩니까?
‘나와 정부를 견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권력에는 견제 받기 싫은 속성이 있습니다.
칼을 휘두르고 싶은 유혹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유혹이 통제 받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위험해지니까 3권 분립이라든지 다양한 견제 시스템이 마련돼 있는 겁니다.
그런데 이 날 노무현 대통령이 소비자 민주주의라는 생소한 말도 끄집어 냈습니다.
“시장을 누가 지배하느냐에 따라서 투명성과 공정성이 문제가 되곤 한다. 시장에서 소비자 주권이 성립될 때 그 경제가 민주주의 경제다. 정치에 있어서도 소비자 민주주의가 성립될 때 그 정치가 올바른 민주주의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말한 겁니다.
소비자 민주주의에 대한 그의 설명은 이어집니다. 정치는 구매자가 따로 없기 때문에 정치의 소비자를 유권자라고 하고 그들이 선거와 투표로 의사를 표시한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는 여기서 중요한 말을 합니다.
가치를 지향하는 소비자인가, 아니면 가치와 관계없이 오로지 분산된 이익만을 추구하는 소비자인가에 따라 그 사회의 운명이 결정된다.
이 말은 영국경제학자 윌리엄 허트의 저서 ‘소비자 주권’에 맞닿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윌리엄 허트는 “경제를 이끄는 주체는 생산자가 아니라 소비자”라고 주장했습니다. 1930년대니까 당시만 해도 상당히 충격적이고 진보적인 이론이었습니다.
그는 “소비자는 투표권을 가진 유권자와 같으며 돈을 어디에 쓸지를 통해서 제품과 생산방식을 결정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노 대통령은 정치 소비자인 유권자가 정당을 선택함으로써 정치 시장의 결정권자가 된다고 한 건데요.
유권자들은 어떤 정치세력이 국가발전을 보다 더 중심적 가치로 두고 있느냐, 아니면 추종집단의 이익을 중심에 두고 있느냐를 판단해서 표의 향방을 결정하는 데 참고하게 됩니다.
그런데 소비자들 중에는 가치 보다 이익에 치중하는 경우 참 많습니다.
정치는 표를 먹고살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데요. 노 대통령은 그래서 사회의 운명이 여기서 결정된다고 말을 한 겁니다.
강성 지지층에게 인질이 돼 그때그때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거나 과잉 대응을 해 사회적 위기를 부를 수 있다고 하면 이해가 쉬울 듯합니다.
7월 임시국회가 시작됐습니다.
아마도 많은 일들이 일어 날 것 같은 예감이 듭니다. 먼저 장관들 인사 청문회가 줄줄이 열리게 됩니다.
지금까지 언론에 보도된 내용들만 본다면 상당수 장관 후보자들이 해명에 진땀을 빼야 할 듯합니다.
정당 별로 장관임명 불가 사유가 있습니다. 대부분 7대 또는 8대 불가 사유를 이야기합니다.
그동안 청문회 사례로 본다면 병력문제와 자녀 입시 비리, 논문표절, 음주운전, 부동산 투기, 재산 불법 증식 등은 청문회 통과가 어려웠습니다.
지난 윤석열 정부 당시에는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없이 임명된 경우가 29명이나 됐습니다.
그야말로 묻지마 보고서 채택 거부와 막무가내 장관 임명이 당연시 된 암흑기였다고 봐야 할 겁니다.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또 쟁점 법안들도 줄을 지어 본회의에 올라가게 될 겁니다.
특히 윤석열 정부 당시 거부권에 막혔던 방송3법은 이미 상임위를 통과했습니다. 노란봉투법을 비롯해서 양곡관리법, 지역화폐법 등도 이제 거부권 걱정 없이 마구잡이로 본회의에서 가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못할게 없습니다.
한 때 영국의회가 그런 말을 들었습니다. 남자를 여자로 여자를 남자로 만드는 것 이외에 다 할 수 있다.
지금 민주당이 꼭 그렇습니다.
제가 노무현 대통령 이야기를 길게 한 이유가 있습니다. 이제 시간은 민주당 편입니다. 지지율도 고공 행진을 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TK에서 마저 민주당 지지율이 국민의힘 지지율을 앞섰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올 정돕니다.
노무현의 원칙을 생각해 보길 권해드립니다.
장관 후보자 중에 민주당의 기준에 미달하면 인사검증 실패를 인정하고 철회하거나 청문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야 합니다.
지난 정부가 지명한 장관 후보자를 29번이나 거부했던 그 추상같던 잣대가 그대로 살아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야 정치 소비자들에게 신뢰를 주고 민주당이 원하는 20년 정권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법률안 심의와 관련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해 보길 권합니다. 야당과 여당은 국정 운영에 참여하는 방법이 전혀 다릅니다.
이제 여당이 됐습니다. 국정운영에 대한 엄청난 책임이 따릅니다. 야당 시각 그대로 법률안을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예산 사정과 지역 균형, 세대 갈등, 계급 갈등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서 국민을 통합할 수 있는 법률안을 만들어야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갈수록 빛을 발하는 것은 바로 원칙을 소중하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원칙이 있는 정부 여당이라는 정치 소비자들의 평가를 받도록 하는 것이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는 지름길입니다.
물들어 올 때 노 저어라 싶어서 마구잡이로 권력을 휘두르다 보면 그 칼에 스스로 베일 수가 있습니다.
여당답게 좀 더 신중하게 국정을 운영해야 할 겁니다. 강성 지지자 뿐 아니라 일반 국민들의 목소리를 진솔하게 들어야 합니다.
지지율은 신기루 같아서 순식간에 사라집니다. 도취되면 화를 부르기 마련입니다. 멀리 갈 것도 없습니다. 바로 윤석열 정부를 보면 됩니다.
‘이재명 정부는 원칙이 있는 정부’란 말을 들을 수 있는 7월 임시국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임한순 경일대 특임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