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에 있었던 초코파이 사건 기억하실 겁니다. 한국판 장발장 사건이었죠?
한 물류 회사 보안업체 직원이 회사 사무실 냉장고에 있던 과자를 꺼내 먹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는데요. 그 과자가 450원 짜리 초코파이 한 개와 600원 짜리 커스타드 한 개, 모두 합쳐서 고작 1050원 어치였다고 합니다.
1심 재판부는 절도 혐의가 인정된다며 벌금 5만 원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검찰이 5만 원이라는 벌금이 너무 작다며 불복해서 기어이 항소를 했습니다. 검찰의 이 항소에 대해서 비난 여론이 들끓었죠? 피도 눈물도 없는 검찰이 되고 말았습니다. 내년 10월에 폐지될 운명인 검찰에 대해서 국민들의 질타가 쏟아지자 검찰은 결국 항소심에서 선고유예를 구형했습니다.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항복한 겁니다.
검찰 스타일 완전히 구겨졌습니다. 만약 유죄가 인정되면 그 직원은 당장 직장에서 쫓겨 나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었는데도 검찰에게는 자비가 없었습니다. 거의 기계적으로 항소했다고 볼 수도 있겠죠.
그런데 이번에는 단군 이래 최대 개발 비리 사건이라는 이른바 대장동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해서 온 나라가 시끄럽습니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달에 화천대유자산관리 대주주 김만배씨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남욱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정민용 변호사에 대한 선고를 했는데요.
잘 아시는 것처럼 재판부는 특경법상 배임이 아닌 형법상 업무상 배임죄로 징역 4년에서 8년까지 실형 선고와 함께 모두 법정 구속했습니다. 첫 기소된 지 무려 4 만에 나온 1심 판결이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은 대장동 개발 사업 민간업자들이 수 천억 원의 개발 이익을 본 것으로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김만배 씨에게 추징금 428억원을 선고하는 등 구형 보다 터무니 없이 낮은 추징금을 선고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동안 관행을 고려하면 당연히 항소를 해야 될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겁니다. 허가 없이 1000원짜리 과자를 꺼내 먹었다고 기소를 하고 항소까지 했던 검찰이 어찌된 일일까요?
초코파이 한 개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수 천억 원이 걸린 재판이죠? 재판부는 피해액 특정이 어렵다며 일부만 인정했는데요. 검찰은 항소심에서 이를 따져야 하는 게 당연한 절차였습니다. 지금까지 검찰이라면 결코 포기하지 않았겠죠?
시중에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관련된 사건이어서 법무부가 항소 포기 압력을 넣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여론이 들끓자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번 상황에 대한 설명을 했습니다.
“검찰 구형보다 높은 형이 선고돼 개략적으로 봤을 때 항소 포기에 문제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또 “대검찰청이 항소 필요성이 있다고 했을 때 ‘신중하게 판단하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고 밝혔는데요. 항소에 대한 부정적 의견을 검찰 수뇌부에 제시했다고 인정한 겁니다.그는 “일반적인 사건의 경우에 구형의 절반 이상 선고되면 항소하지 않으니까 문제되지 않는다고 봤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재명 대통령 보호를 위한 항소 포기라는 야당의 지적에 대해서는 “이 사건과 이 대통령이 무슨 관련이 있나”며
선을 그었습니다. 또 성남도시개발공사가 이미 민사소송 제기했기 때문에 항소심에서 범죄 수익 범위가 명확히 확정되면 민사소송에서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럼 먼저 이번 파동으로 현 정부 여당이 손해를 볼까요? 저는 정부 여당이 남는 장사를 했다고 봅니다. 검찰만 폭망입니다.
검찰청 폐지에 대해 부정적 생각을 가지고 있던 보수 지지자들을 결정적으로 돌려 세웠습니다. 검찰의 이미지가 완전히 무너진거죠. ‘없어져도 싸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이대로 검찰을 놔 둔다면 앞으로 4년 반 동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겠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심어 준 겁니다.
진보 진영은 어떨까요? 물 만난 고기고 승천하는 용입니다. 그 것 봐라. 검찰이 그동안 보수 정권을 위해서 어떻게 행동 했겠나 이재명 대통령 수사와 기소가 모두 이렇게 엉터리로 이루어진 게 아니냐. 조작된 거다. 검찰이 정권 핵심부의 의중을 지레 짐작하거나 몇 마디 에둘러 지시만 해도 뭐처럼 달려 들어서 없는 죄도 만들어 내는 조직이다. 이런 항변을 할 수 있게 만든 겁니다.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리가 한 말이 이런 걱정을 더욱 크게 합니다. 항소 포기를 항의하기 위해서 자신을 방문한 대검 연구관들에게 그가 했다는 말이 가관입니다.
“검찰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항소 포기를 결정했다.” 법률적 판단을 한 것이 아니라 정무적 판단을 했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사법 거래를 했다는 자백입니다. 이거는 심각한 이야깁니다. 추후 그의 발목을 잡을 이야깁니다.
어떻게 보면 양쪽이 주고받는 셈법이 맞아 떨어졌다는 겁니다. 항소를 포기하는 대신 검찰청을 폐지하지 않겠다는 확답을 들었다는 겁니까?
이런 말도 했습니다. “검찰 조직이 존폐 기로에 선 상황에서 용산이나 법무부와의 관계를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집권 여당이나 정부 눈치를 봐야 했다 이해해 달라 뭐 이런 취지의 이야깁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검찰이 어떻게 처신해 왔는지 한숨이 나올 뿐입니다. ‘조폭적 야비함과 천박함을 가진 조직’이라는 비아냥을 들을 수밖에 없었구나 싶습니다.
그리고 또 누가 덕을 봤을까요? 당연히 피고인들입니다. 항소심에서 검찰이 열심히 자료를 준비하고 소송을 잘 진행해서 피해 규모를 특정했다면 추징금이 수 천억 원이 될 수도 있었겠죠?
검찰이 판단하기로는 김만배가 6111억원의 범죄 수익을 올린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선고된 추징금은 428억 원. 이것으로 게임 셋입니다.
여기다가 여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배임죄까지 없어지면 최종 형량이 확 줄어 들 테고 몇 년 술 끊고 독방에서 참선하다 출소하면 재벌이 될 수 있는 길이 열리는 겁니다. 이제 정부 여당이 검찰을 강아지 다루듯 마구잡이로 다뤄도 편들어 줄 국민이 없을 듯합니다. 정말 맞아도 싸다고 박수 치는 국민이 많을 듯 합니다.
그런데 어떤 변호인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피고인들을 대상으로 수천 억원 대 추징은 못하지만 나중에 법무부와 검찰 수뇌부들을 상대로 국민의 이름으로 손해배상 소송을 할 수 있다는 논리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직권남용죄 적용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국민에게 돌아가야 할 수익금이 대장동 일당들에게 돌아가도록 직권을 남용했다는 겁니다. 일리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했던 말 중에 팩트 체크를 하나 해 볼까요? 그는 항소 포기로 7800억원에 이르는 범죄 수익금을 추징할 수 있는 기회를 잃었다는 지적을 반박했습니다. 진행 중인 민사소송을 통해서 피해액을 돌려 받을 수 있다고 주장한 겁니다.
과연 그럴까요? 민사 재판은 형사재판 쪽으로 고개를 쭉 빼고 그동안 아예 진행조차 되지도 않았습니다. 형사사건 재판에서 나온 결과를 바탕으로 소송을 진행한다는 계획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형사 재판에서는 검찰의 수사와 피고인들의 진술 등으로 사건의 실체가 어느 정도 드러나게 됩니다. 하지만 항소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제 피해 규모를 두고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는 일이 불가능하게 되고 말았습니다.
사실상 1심에서 선고한 범위 내에서 손배 소송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1심 재판부도 같은 의견을 냈습니다. “성남시가 민사소송 절차를 통해서 피해를 회복하는 것은 심히 곤란하게 됐다고 보는 것이 상당하다. 피해 회복 과정에 국가가 개입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성남시는 최대한 환수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장담하건데 쉽지 않습니다. 무슨 수로 받습니까? 행정기관인 성남시가 무슨 수로 숨은 재산을 찾아 내고 증인들을 불러 진술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끝난 겁니다. 하여튼 이번 항소포기 파동으로 검찰은 회복할 수 없는 깊고 깊은 상처를 입었습니다.
정권 앞에서는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잎 행태를 만천하에 드러내면서 검찰이 없어져도 될 정치 조직이라는 인식을 국민들에게 확실하게 심어 주었습니다. 수천억 원의 손해를 보든 말든, 국민이 손해를 보든 말든 오로지 해바라기처럼 정권의 눈치를 보며 자신들의 영달을 추구해온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 겁니다.
검사장과 지청장 등 검사들이 들고 일어나면서 검난이라는 표현을 언론에서 쓰고 있는 데요. 오래 못갑니다. 검찰은 그런 체질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통과의례에 불과합니다. 또 여당이 검찰에 대한 징계를 일반 공무원 수준으로 강화한다지요? 그동안의 업보입니다.
야당이 특검한다, 고발한다 떠들썩 합니다만 그 숫자로 뭔 특별한 일 벌일 수 있겠습니까? 하기야 요즘 이재명 대통령 역성을 들고 있는 보수 논객이죠? 조갑제 씨가 이재명 대통령에게 최대 위기라며 항소 포기 지시자를 색출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으니까 상황이 심각하기는 심각한 것 같습니다. 속 상한다고 소주 많이 드시지 마십시오. 속만 더 상합니다. 그리고 대중들은 잘 잊는 속성이 있습니다. 자기 치유 본능입니다. 3개월, 길어도 6개월만 지나면 이 사태 자체를 잊게 될 겁니다.
감기 환자가 많습니다. 외출하실 때 마스크 꼭 하시고 옷도 두둑하게 입으십시오. 무조건 건강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