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청송객주문학대전 수필 공동대상
돌확에 담긴 시간의 온기
오랫동안 제 자리를 지켜온 마당 한켠의 돌확을 바라보다 문득 떠오른 제 마음속 이야기를 함께 나눌 수 있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돌확은 언제나 우리 집의 조용한 그릇이었습니다. 겉으론 아무 일 없는 듯 묵묵했지만, 그 속에는 어머니의 손길과 절구 내리던 소리, 새벽 공기의 풋 내음, 굳은 손마디가 어루만진 시간이 겹겹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돌확 앞에 서면 손끝에 밴 짠 내와 등을 타고 흐르던 겨울 햇살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곤 합니다. 아무도 눈길 주지 않던 자리였지만, 그곳에는 온기와 차가움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말없이 세상을 받아안던 그릇처럼, 나도 언젠가 세상을 조금 더 담담하게 바라보고 싶었습니다.
몇 번의 계절을 넘다가 다섯 번째 겨울 끝자락에서 큰 상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 시간 동안 마당 끝, 새벽 햇살에 적셔진 돌멩이들을 떠올렸고, 아주 천천히, 오래 절인 배추처럼 옛 기억들이 내 마음속 깊은 곳까지 은은하게 스며들었습니다.
삶의 작은 조각들이 어설프게 맞물리던 순간마다 문득 생각합니다. 이름도 없고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자리에 조용히 피어나는 온기가 결국은 우리를 살아가게 하고, 서로를 사랑하게 만드는 힘이 아닐까 하고요.
이 기쁨은 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겨울마다 마당에서 김장하시던 어머니의 손, 돌확에 새겨진 오래된 흠집들과 흔적, 그 시간이 고스란히 오늘의 저와 함께 있습니다.
불현듯 장맛비 내리던 날과 고요한 새벽을 가로지르던 별빛이 떠오릅니다. 삶이라는 그릇은 아마도 이런 빛과 견디기 어려웠던 무게를 함께 담아내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돌확과 어머니에게서 조용한 여백과 한 줄기 힘을 배웠습니다. 저의 수필도 누군가의 마음 한켠에 오래 절인 배추 한 조각처럼 스며들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바람은 없겠습니다.
이번 상을 계기로 저도 삶의 결을 따라 한 겹 한 겹, 천천히 써 내려가고자 합니다. 심사를 맡아주신 심사위원님, 제 글에 숨결을 더해준 우리 가족과 저를 아는 문우들, 보이지 않는 독자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를 만들어주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청송이라는 이름처럼 맑고 깊은 마음으로, 더 낮고 고요히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