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2회 청송객주문학대전

문장은 언제나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아래

선 하나를 긋는다


밑줄은 말의 그림자,

이미 지나간 의미를

다시 불러들이는 얇은 다리다


누군가는 사랑 밑에 긋고,

누군가는 후회 밑에 긋는다

가끔은 지우지 못한 이름 밑에,

혹은 아직 끝나지 않은 문장 밑에.


시험공부의 잉크 냄새 속에서

밑줄은 이해의 표식이 아니라

두려움의 손가락이었다


이제 나는 밑줄을 긋지 않는다

대신 살아 있는 것들 아래

눈길을 한 번 더 준다


밑줄은 결국

세상을 읽는 방식이 아니라

멈춰 서서 다시 보는 법이었다


한 사람의 생애를 펼쳐 보면

가장 진한 밑줄은 언제나

사랑과 상처의 경계에 그어져 있다

▲ 시 은상 성백광,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 대상 수상 (제목: 동행), 대구 시조 시인협회 전국 시조 공모전 대상 수상 (제목: 산란), 저서: ‘나도 작가로 착각하며 살았다’ (마이웨이 북스)
▲ 시 은상 성백광, 제1회 어르신의 재치와 유머 짧은 시 공모전 대상 수상 (제목: 동행), 대구 시조 시인협회 전국 시조 공모전 대상 수상 (제목: 산란), 저서: ‘나도 작가로 착각하며 살았다’ (마이웨이 북스)

◇수상소감
처음 이 시를 쓸 때, 나는 ‘밑줄’이라는 사소한 행위 속에 인간의 마음이 얼마나 많이 숨겨져 있는지를 생각했습니다. 밑줄은 단순히 글자를 강조하기 위한 표시이지만, 실은 우리가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는 몸의 기억이자, 마음의 반응이라고 느꼈습니다. 사랑의 문장에도, 후회의 단어에도, 이해하고 싶었던 세상의 언어에도 우리는 무심히 밑줄을 긋습니다. 그것은 이해를 향한 시선이자, 잃어버리지 않으려는 간절함의 형태입니다.

저에게 밑줄은 언어의 장식이 아니라 시간을 붙잡는 제스처였습니다. 지나간 의미를 다시 불러들이려는, 혹은 잊히는 자신을 확인하려는 손끝의 떨림이었지요. 시 속의 ‘밑줄’은 결국 말보다 더 인간적인 흔적이었습니다. 그 밑줄 아래엔 우리가 한때 사랑했고, 믿었고, 또 실패했던 장면들이 숨 쉬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식의 밑줄이 아니라 감정의 주석이었습니다.

이 시를 쓰며 깨달은 것은 밑줄이 ‘이해의 표시’가 아니라 ‘멈춤의 표시’라는 점이었습니다. 세상을 너무 빠르게 통과하며 놓쳐버리는 것들 이를테면 사람의 얼굴, 한 문장의 떨림, 바람의 냄새 등 그 모든 것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작은 멈춤의 기술이 바로 밑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는 세상을 읽는 법이 아니라, 세상을 다시 보는 법에 관한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이 상은 저에게 단순한 결과가 아니라 ‘멈춤의 보상’처럼 느껴집니다. 잠시 멈추어 언어의 깊은 곳을 더듬어 보고 내 안의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었던 시간들에 대한 위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이런 시를 쓸 수 있는 시간의 여백을 허락한 모든 이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제게 밑줄을 가르쳐준 것은 학교의 교과서가 아니라 삶 그 자체였습니다. 사랑과 상처, 이별과 화해의 순간마다 저는 마음속에 조용히 밑줄을 그었습니다. 그 선들이 모여 지금의 제가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세상의 문장들 사이를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그 밑줄의 의미를 계속 찾아가고자 합니다.

감히 이 자리를 빌려 말하고 싶습니다.

시란, 결국 우리가 놓친 것들 아래 그어보는 또 하나의 밑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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